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어디선가 본 듯하고 겪어 본 듯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데자뷰 현상(deja vu)’이라고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인데 뇌가 기억을 못해서이거나 실제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뇌의 작용에 의해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는 어린 시절 헤어졌더라도 부모 자식처럼 천륜지간의 사람들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 뭔가 끌리는 느낌이 들어 돌아보게 되고 부모 자식 사이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친밀감을 느낀다고들 한다. 어른들은 피가 섞였으니 왜 안 그렇겠냐고 말한다. 데자뷰 현상이든, 천륜으로 인한 것이든 처음 보고도 뭔가 예정되어 있는 운명처럼 나 자신과 강한 인연의 끈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참으로 잊기 힘든 경험이다. 그것이 단순히 감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에 다녀온 나 역시 그러하였다. 이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주관하는 이천향교오층석탑 탐방을 위해 일본행 항공기에 올랐을 때만 해도 내가 일본에서 그러한 흥분에 휩싸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천의제21의 상임의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일행(박석호기자님, 김나영국장님, 김대훈교수님)과 함께 항공기에 올랐을 뿐이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약탈해간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아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목적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에게 이천향교오층석탑이 일본에 있음을 처음 제보해준 김창진 씨의 안내로 탑이 있는 동경 슈코칸(징고관)을 찾았다. 일제시대 때 일본이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겼다가 아예 본국으로 자기네 문화재로까지 지정해서 가지고 있는 약탈된 우리의 문화재. 그 앞에 섰을 때, 그건 한 마디로 수십 년 전 잃어버렸던 자식을 다시 만난 감동이었다. 얼굴을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엄마를 기억 못할 게 분명한데 서로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할까, 그런 두려움은 헛된 것이리라. 처음 마주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아무도 갈라놓을 수 없는 우리의 끈끈한 피로 연결된 인연을. 우리 땅에 있는 유명한 절에 들렀을 때 보는 탑에서 느끼던 친밀감, 피가 섞인 이들에게서 느끼는 친밀감과 더불어 만남에 대한 기쁜 감동이 밀려 왔다. 이천향교오층탑. 그도 같은 심정 아니었겠는가.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신을 길러준 한반도를 떠나 엉뚱한 일본 땅에 옮겨 선 채 아주 오랫동안 피붙이를 그리워하며 우리를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단아하게 정돈된 슈코칸의 뒷뜰 명당 자리에 서 있어도 아무리 일본의 섬세한 문화재 관리의 손길을 받고 있어도 자신의 뿌리는 그 곳이 아니기에 자신을 그곳에 옮겨간 이들이 관리하는 손길조차 반갑지 않았을지 모른다. 만남의 감동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탑에 서면 같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직접 오층탑이 우리 땅 이천에 있었을 때 본적이 없는 세대의 사람들이라 해도 한민족의 유전자가 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층탑을 계속 일본 땅에 남겨 놓는다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될 것이다. 낳아놓고도 기르지 않는 부모가 참다운 부모가 아닌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낳은 문화재를 남에게 뺏기고도 이렇게 멀쩡하게 손도 쓰지 않고 있다면 말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내 자식을 남의 손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되겠다. 부모 사랑을 기다리는 오층탑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하루가 급하다. 범시민적으로 한마음이 되어 오층탑 반환에 힘써 우리 땅에서 그를 맞이하고 싶은 맘 간절하다. 한민족 유전자가 기억하는 ‘이천향교오층석탑’ 이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의장 (박연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