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희망’을 꿈꾸며 [더타임즈] 미국의 한 지방도시에서 대통령과 시민과의 대화가 열렸다. 한 시민이 질문을 마치고 자신을 따라오느라 학교를 결석한 딸아이 케네디가 걱정이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자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쪽지를 써드릴까요?” 농담으로 알고 웃고 있는 시민 쪽으로 대통령은 성큼성큼 걸어가 즉석에서 쪽지를 썼다. “케네디의 선생님에게. 케네디의 결석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케네디는 나와 함께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얼마 전 미국에서 있었던 버락 오바마의 에피소드이다. 버락 오바마가 없었다면 미국 사회는 아직도 흑인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굴레 속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박수를 보낸 이유는 부모의 이혼과 마약, 흑인이라는 소외 계층으로서의 굴레를 딛고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변화를 기다릴 것인가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면 영원히 가난하게 살다가 죽어야 하고 부자 부모를 만나면 죽을 때까지 부유하게 살 수 있다면 지금의 사회가 수천 년 전 신분사회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최근 역사드라마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 배경이 되고 있는 고대 신라는 골품이라는 신분제로 인해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어서 왕의 아들이라도 첩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는 등 신분을 중시했다. 한번 성골은 영원한 성골이었던 것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은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펼칠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민주사회에서는 많은 기회가 평등하게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소외 계층이 존재한다. 장애인, 노인, 경제적 약자 등 고대사회처럼 신분에 따라 주택의 규모나 벼슬의 상한선, 의복 등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제한이 따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가 만들어 놓은 굴레, 혹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굴레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는 그러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변화가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너무 더디게 올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변화를 기대하고 변화를 만들어 갈 때 우리 사회의 모습도 변해 갈 수 있다.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버락 오바마가 나오지 않았다면 여전히 미국 사회는 흑인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제한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경이나 악조건을 딛고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지만 사회를 함께 변화시켜 나가는 일에도 동참해야 한다. 제한과 차별 속에 갇힌 사회에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꿈은 꿈으로 끝나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장애인을 아무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생의 계획을 가질 수 있겠는가. 돈이 없어서 교육의 기회를 제한받는다면 어떻게 원대한 비전을 품을 수 있는가. 닫힌 가능성 속에서 사람들은 노력해 보다가 벽에 부딪치고 쉽게 포기해 버릴 것이다. 변화가 없이는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인생의 행․불행, 성공과 실패는 모두 궁극적으로 본인의 책임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은 출발선상에서 똑같이 출발할 수 있는 사회를 나는 기대한다. 변화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땀 흘릴 것이다. 우리가 지금 흘리는 이 땀과 수고는 지금 나의 삶을 당장 변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를 변화시켜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어야 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더타임스, 박연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