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소장 조규익) 학술자료총서1 "경천아일록" (학고방, 2012)으로, 카자흐스탄에서 20년을 거주하고 있는 김병학 시인이 번역, 편찬했다. 김병학 시인은 카자흐스탄에서 20년째 거주하면서 한글학교 교사, 대학한국어과 강사, 재소고려인 신문 <고려일보> 기자 등을 역임했다. 시집 <천산에 올라>, 에세이집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재소고려인 구전가요집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2>, 고려인 극작가의 작품집 <한진 전집> 등과 3권의 번역시집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낸 바 있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이 일기가 소개되었지만, 국한문 혼용으로 쓰인 일록의 문체와 필체가 난해하고 특정한 시대적 상황이 난해해 일기의 사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병학 시인은 1920년대 한국의 신문에 실린 김경천 관련기사나 구 소련권 관련서적들을 보충하여 일록의 내용을 더욱 충실히 보완했다. "경천아일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이후 우리나라가 외세에 유린되어버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큰 부대를 이끌고 직접 전투에 참가한 군 지휘관이 현장에서 쓴 유일한 일기다. 또 서양에서도 이와 비견되는 기록으로는 고대 로마시대 시저가 쓴 "갈리아전기" 정도일 뿐 이 책은 일제식민지 시절 독립 운동가들을 대표하는 김구의 "백범일지"와 비견되는 노령지역 항일 운동가의 탁월한 기록물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김경천은 대한제국 당시에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5년을 사관학생과 장교로 복무한 한국 최초의 최고급 군사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에 맞서 무장투쟁을 준비하고자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했다. 그 후 일본군, 마적 및 러시아 백군에 맞서 용맹하게 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그는 연해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1920년부터 1925년까지 틈틈이 일기를 써왔는데 그것이 바로 이 "경천아일록"이다. 1925년 말까지는 일기형식으로 각종 사건과 체험들이 기록되어 있고, 연해주 각지에서 벌어진 한인빨치산 전사들의 용맹한 활동상 및 그가 관찰한 각 지역 주민과 사회세태에 대한 묘사, 멀리 서울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는 내용 등이 김 장군 특유의 산문 속에 절절이 표현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