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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광주 5.18 사태,진실 들여다보기.1>폭도 괴한들(?) 앞에 팬티바람으로 선 최 웅 11공수여단장과 일행들

제 2의 6.25 라 불리는 5.18 광주 사태 기록서 "전선 없는 전선". 광주는 전쟁터 였다.

 

이 폭도 괴한들(?)은 누구 인가?

  그들은 무등산 자락  7부 능선에서 최 웅 여단장  일행을 순식간에 제압 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 상황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당시 광주현장에 있었던 사람, 또 다른 하나의 사람들은 당시 광주 현장에 없었던 사람으로 추측성 발언을 하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고 한다. 사건의 실마리도 현장에 있다. 당시 광주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당시 상황을 미분(미세하게 나누어 분석) 하듯이 또는 비디오 슬로우 모션으로 비디오 판독하듯이 당시 상황을 다시 한 번 재구성해 보자.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5.18 광주문제의 진실과 거짓 속에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린 중대 사안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가고 있다고도 하고, 대한민국에 공산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도 이야기 한다. 이 사회에 엄청난 거짓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고가 줄줄 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상당히 피해를 보고 있다.(5.18 유공자 보상으로  매달 대한민국 국고에서 수백억원 씩이  지급되고 있다고 한다)

90년 당시 5.18 보상 2억 원을 받은 사람이 중국을 통하여 북한으로 들어가 북한의 영웅으로 환영 받은 바 있고.

현 한국의 유명 인사들도 5.18 유공자 혜택을 받고 있으며 그 속에 이해찬, 김경수, 문재인(동명이인지 모름), 한명숙 이런 사람들도 명단에 보인다.


5.18 유공자가 최초 150명에서 5천여 명으로 인원이 늘어나 대한민국 국고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어떻게 되는가?

세월호 마냥 좌로 기울어 침몰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육군 3사관학교 5기로 임관하고 전 후방에서 20여년을 근무한 서명수씨가 최근 5.18사태의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전선 없는 전선“(광주 5.18사태는 전선이 없었다는 뜻. 부제 제2의 6.25, 광주사태 ) 이라는 책을 썼다.

                                                         <책 표지 사진>

이 책은 1980년 5월 18부터 27일까지의 광주에서 일어난 내용을 가감 없이 안기부 상황일지에 근거하고  그 때 작전에 참가한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록하였다.

책의 중요한 사건들을 재조명하여 그 날의 우리 병사들의 숨결을 들어보자.

 

                              <“전선 없는 전선“ 책 저자 서명수씨(육군3사5기)>

                      

괴한(?)들에게 군복,군장 강탈당하고 팬티바람으로 선 최 웅 11공수여단장

이 괴한들은 누구인가? 광주 민주화 시민군 이라고?


대한민국 기자가 대한민국 공수여단장이 팬티바람으로 북괴특수군 앞에 서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떤가?

입이 벌어진다.

체면을 생명보다 중히 여기는 한국군, 특히 장군들은 본인은 창피스러우니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제3자도 굳이 자랑스럽지 않으니까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당시 국군 수뇌부도 이런 세세한 이야기는 몰랐을 것이고 

그렇지만 광주 5.18사태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었으니 이제 속속들이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왔다.


왜냐하면 진실과 거짓을 파헤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망하기 때문이다.

거론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기자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을 증언하는 공수 11 여단 62대대 통신병 문병소 당시 중사 (우측)>


본 사건은 이 책에 의하면 1980년 5월 21일 19시 30분경 ,11공수 여단장 최 웅 준장이 운전병과 같이 조선대학 정문을 통과하여 나갈 때에 폭도들의 KAL50 기관총 사격을 받아 운전하사관이 즉사하고 핸들이 꺽이면서 차가 뒤집혔다.(야간에 달리는 짚 차를 조준 사격하여 사망케 하였다면 이 자들은 특등사수임이 틀림이 없다.- 이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 광경을 멀리서 본 부대원들은 여단장이 사망했다고 상부에 보고를 했다. 그렇지만 11공수여단장 최 웅 준장은 짚차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혼자 한참을 걷다가 조선대학 무등산 자락 3부 능선에서 김모 하사 외 2명의 공수병과 합류, 인사를 하려하자 기도비익 차원에서  인사를 만류하고 계속 능선을 오르다가 5부 능선에서 2명의 공수병이 더 합류되어 총 6명이 7부 능선으로 이동하는데 신원미상의 건장한 7명과 만나게 되었다.


여단장 쪽에서 그들에게 가서 신원을 확인하려 하였으나, 누구냐고 물어볼 여유도 없이 상대방에게 제압을 당해서 꼼짝 못 하는 신세(무술고단자들에 의해)가 된 가운데 군복과 베낭 등 소지품 다 탈취 당하고  그 들  중  한 者가 "이 자식들 다 죽이자우"(북한 말)라고 말하였으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는" 여기서 총소리 나면 우리의 위치가 탄로 나니까 안된다. 내버려 둬라 무등산까지 가려면 이틀 걸릴 것이다" 하고 그들은 사라졌다. 이곳에서 옷 다 뺏기고 팬티만 입은 최 웅 준장의 일행들은 미군부대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하여 무등산 꼭대기에 위치한 미군 통신 기지를 향하여 올라갔다.


단순 지역 소요란 말만 듣고, 진압봉 하나 들고  광주에 출동했다가 총을 쏘며 공격하는 폭도 괴한(?)들에게 쫒기는  공수부대-  이 폭도 괴한(?)들은 누구인가?  당시 정보 부재 였다,

미군 통신기지에 도착 즉시 몸에 맞지 않은 헐렁한 미군 군복을 얻어 입고 5월 23일 15시경 병력 이동 헬기와 이들을 경계하는 경계용 헬기로 주남마을 학산 계곡에 전개되어 기도비익 하고 있던 11공수여단으로 비상식량과 실탄을 가지고 왔다. 11공수여단은(당시 경계용 실탄만 소지) 시위대(?)로  부터 총격 세례를 받아 쫒기는 신세가 되어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직 살겠다는 일념 이였으니 배가 고픈것도 잊었다. 실탄과 전투식량을 지급 받은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천하의 공수부대원으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당신 최 웅 준장과 같이 동행한 김모 하사가 문병소 중사에게 전한 것을 이 책의 저자 서명수씨(당시 9사단포병연대 작전보좌관)에게 공개한 내용이다. (11공수여단 62대대 14지역대장 최규진 소령도  서명수씨의 군 동기생으로 이 책의 상당부분을 같이 저술하였다)


​ 그런데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11공수여단장 최 웅 준장이 북괴 특수군 에게 붙잡혀서 군장과 군복을 탈취 당하였는데 아무리 어두워도 상대(최여단장)가 권총을 찬 걸로 봐서 한국군 지휘관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해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5월 25일날 11공수여단이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연결된 사건과 연계되는 엄청난 미스테리가 있다고 당시 현장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광주 5.18사태의 마무리 작전을 위하여 5월 25일 10시에 7공수 여단 2개 대대는  K57 비행장으로 헬기로 먼저 이동하고, 11공수여단 3개 대대는 차량으로 송정리 방향, K57 비행장으로 이동하는데, 사전에 정보사에서 이동 차량과 안내장교11명(소령1명, 위관10명) 지원이 되어 같이 동행하였다. 1 ~2시간  후 11공수여단장 최 웅 준장이 부대 이동을 멈추게 하고, 부대 휴식 겸 작전회의를 위해 대대장들을 불려 모았다.

작전회의가 끝나고 부대로 돌아가는데 62대대 무전하사관 문병소 중사가 이상한 느낌을 받아 첨병부대를 보니 첨병부대의 안내장교가 바뀌어 있었는데  그 자가

21일 경 도청 앞에서 시위대를 지휘하던 자와 흡사하여 위장 소령(敵軍)이라고(붉은 조끼를 입음) 여겨져서 이 사실을 대대장에게 전하였으나 정작 첨병부대인 63대대에게는 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63첨병 대대는 이미 아군 매복지점에 들어간 상태였다. 위계 소령은 최 여단장 작전회의 중일 때  교육사령부 보병교도대대장을 만나 전하기를 “지금 오는 부대는 11공수여단병력을 다 죽인 폭도들이 그들의 군복을 갈아입고 지나가니 저들을 다 죽여라“고 말하였다고  사건 후 보병교도대대장이 진술 했다. (본 내용은 62대대 이재원 대대장이 참모회의 시 발설된 내용이다)

그 후 그 위계(적군의 속임)소령은 아군의 추격 끝에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한다.

                          <모 유투브 방송에 나와서 증언하는 문병소 당시 통신하사관.>


아군 매복조의 오인 집중사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다행이 무전이 살아있어 즉시 연락하여 사격을 멈출게 할 수 있었으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후 였다. 사망 9명, 부상 33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문병소 중사의 눈에는 80명이상이 사상자가 났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11공수여단장 최 웅 준장은 역적으로 알고 있으며, 5월 21일 무등산을 넘다 북괴특수군에게 군복과 군장을 탈취 당하였을 때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적에게 제압 당하여 죽기 직전에 적과 모종의 합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적에게 협조하라? 그래서 많은 부하를 죽였나?)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11공수여단장 최 웅 준장은 당시 대한민국 軍 수뇌부도 모를 그 때의 상황을 밝혀야 한다.

그 때 신원 미상의 괴한들은 누구인지?


이것은 창피도 아니고 체면상 문제도 아닌 광주 5.18 때 北韓軍이 왔느냐 ? (그것도 특수군),

안 왔느냐에 대해  對 국민 전황 보고(報告) 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한 정황보고가 없기 때문에  계엄군이 광주 여성을 성폭행 했느니 모함을 받고 있으며 대한민국 군이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 시민군(?)이란 자들은 21일 경 계엄군이 있는 도청으로 차량 돌진해서  계엄군을 살상케 하고 계엄군의 시신을 끌고 가서 계엄군의 군복을 벗기는 것이 목격 된 바 있다.


계엄군의 군복을 어디다 쓰려고 가져 갔는가?


이것은 광주 5.18사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며 광주 5.18사태를 밝힐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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