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는 이번 대회 남자 M45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24년 파라육상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2025년부터 마스터즈 육상에 도전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세계마스터즈 무대에서 거둔 값진 성과다.
붉은색 일본 대표 유니폼을 입은 스즈키는 ‘WMAC DAEGU 2026’ 공식 포토월 앞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밝은 표정으로 기념촬영과 인터뷰에 응했다. 오른쪽 하퇴 의족을 착용한 그의 모습 뒤로 대구스타디움과 대회 마스코트가 함께 담기며 새로운 도전의 의미를 더했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 절단…육상 입문 3개월 만에 패럴림픽 기준 통과
1980년 5월 4일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난 스즈키는 중·고교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다. 순다이 고후고교 재학 당시에는 야마나시현 대표로 일본 국민체육대회에 출전해 3위에 오를 만큼 뛰어난 운동 능력을 보였다.
쓰쿠바대학교 체육전문학군 추천입학을 앞두고 있던 고교 졸업 직전,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의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결국 오른쪽 무릎 아래 약 11㎝를 남기고 절단해야 했다.
대학을 1년간 휴학한 그는 의족 재활을 위해 도쿄의 신체장애인복지센터에서 생활했고, 이 과정에서 의지·보조기 전문가와의 만남을 계기로 높이뛰기에 입문했다.
성장 속도는 놀라웠다. 육상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시드니 패럴림픽 참가 기준인 1m73을 넘었고, 일본 최초의 의족 높이뛰기 선수로 패럴림픽 무대에 섰다.

패럴림픽 6회 연속 출전…2m02 아시아기록 수립
스즈키는 시드니를 시작으로 아테네, 베이징, 런던, 리우데자네이루, 도쿄까지 6개 대회 연속 패럴림픽 출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06년 재팬패럴림픽에서는 2m00을 넘어 의족 선수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2m를 돌파한 높이뛰기 선수가 됐다. 이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인 ‘점퍼스 니(jumper’s knee)’로 약 7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15년에는 9년 만에 개인 최고기록을 2m01로 끌어올렸고, 2016년에는 2m02를 넘어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선수 프로필에 기록된 그의 최고기록 2m02는 아시아기록이자 일본기록이다. 장애분류는 오른쪽 하퇴 절단에 해당하는 T64 클래스다.
스즈키는 2017년과 2019년 세계파라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각각 동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파라육상 은퇴 뒤 마스터즈로…“새로운 경쟁의 시작”
20년 넘게 세계 파라육상 무대를 누빈 스즈키는 2024년 일본 다카마쓰에서 열린 재팬파라대회를 끝으로 파라육상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높이뛰기까지 내려놓지는 않았다. 2025년부터 마스터즈 육상에 참가한 그는 2026년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 M45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또 다른 선수 인생의 문을 열었다.

패럴림픽에서는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했다면, 마스터즈 무대에서는 나이를 기준으로 선수들과 겨룬다. 스즈키에게 이번 도전은 사실상 ‘같은 장애를 가진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연령별 경쟁으로 무대를 옮긴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파라선수’라는 범주를 넘어 한 사람의 육상선수로 다시 국제무대에 서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대구대회 출전은 더욱 특별하다.
선수에서 지도자·행정가로…2028 LA 향한 일본 파라육상 이끈다
스즈키의 역할은 현역 선수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 그는 일본파라육상경기연맹 강화위원장을 맡아 2028년 로스앤젤레스 패럴림픽을 향한 일본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강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25년 파라육상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강화위원장에 취임했다.
2017년부터는 야마나시시 관광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야마나시시 교육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교통사고와 재활, 국제대회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연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스즈키가 걸어온 길은 은메달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교통사고로 인한 오른쪽 하퇴 절단, 의족 재활, 육상 입문 3개월 만의 패럴림픽 기준 통과, 패럴림픽 6회 연속 출전, 2m02 아시아기록, 세계선수권 메달, 파라육상 은퇴, 그리고 마스터즈 육상으로의 새로운 출발까지 그의 선수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46세의 스즈키는 이제 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는 젊은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대구스타디움에서 그는 다시 유니폼을 입었고, 다시 바를 바라봤으며, 다시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경쟁했다.
장애라는 경계를 넘어 세계 정상급 선수로 자리 잡았던 스즈키 도루는 이제 나이라는 또 다른 경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분명했다. 선수에게 도전의 끝은 스스로 멈추는 순간까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