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민족운동 4.19학생운동 그리고 5.18민주운동

  • 등록 2008.05.08 10:34:14
크게보기

한국학생운동자협의회 유영철회장

 
- 사진:오한 김경록
“3,1운동은 제국주의 일제에 대한 민주항거였고 4.19는 자유당 정권에 대한 민주혁명이었고 5,18은 전두환군부에 대한 민주운동이었다”고 유영철(70세) 한국학생운동자협의회장은 규정했다.

그는 또 “이 땅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과 지금 향유하고 있는 민주화는 그때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필연성을 지니고 있었다”며 “특히 5,18 광주민주운동도 4,19혁명 정신을 이어받은 것으로 세계역사에 유래없는 찬란한 역사”라고 말하고 “이런 정신적 지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선진국도약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1961년 4월 19일 당시 연세대 4학년 재학중으로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유회장은 각 단과대학 학생회 회장과 총학생회 간부등과 모여 3.15부정선거와 이승만 정권에 대한 항거운동을 전개하기로 행동통일을 한 후 4월 19일 정오 거사했다.

연세대 3,000여명의 학생시위대는 당시 신촌로타리와 서대문로터리에서 ‘우리 자손의 건전한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선두에 나서게 됐다’고 천명하고 시위에 나서자 이승만정권의 사주를 받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사격을 가했고 전국적으로 200여명 이상이 사상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전국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연세대교수를 비롯한 대학교수 400여명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정국이 극도로 악화일로에 있었다.

당시 백남준총장과 최현배부총장등도 시위대를 보고 ‘올바른 소신과 용기로 연세의 전통을 세웠다. 앞으로도 자유를 위해 힘껏 싸워달라’고 눈물로 격려하기도 했다고 유회장은 말했다.

세계 선진국 도약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렇게 일어섰던 4월 혁명이 결국 이승만대통령의 하야와 장면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서이 마무리되었지만 국내치안은 극도로 문란했다.

유회장이 이끄는 연세대 시위대는 질서회복과 사태수습에도 나섰고 경찰의 공백을 메워나갔다.
유회장은 “당시 3,15부정선거라는 반민주적인 범죄행위가 4,19혁명의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어 행동하는 양심 대학생들이 분연히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며 당위성을 역설했다.

유회장은 “쓰라린 조국의 역사에 대한 비통함과 찬란한 역사를 되찾고자 하는 피끓는 애국충정이 폭발한 것이 바로 4,19혁명이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전 조직이었던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자치적 학생단체인 ‘대한민국 대학생총연합회’가 결성되어 학생운동을 계속 주도해 갔다.
그러나 불과 1년을 넘기지 못하고 5,16 이 발발함으로서 일부의 주장처럼 4,19의 의미가 다소 희석되는 결과를 낳았다.

5,16일 일어나자 유회장은 역시 학생회 대표로서 박정희, 김종필등 당시 군 지도자들과 만나 그들이 당시 내세웠던 공약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돌아가기를 바랬으나 결국 민정이양을 거부하고 군정을 계속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런 과정에서 5,16을 지지한다는 세간의 의혹을 물리치기 위해서 곧바로 자원입대했다.

유회장은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후 동아건설산업에 첫 월급장이로 입사한 후 37년간 동아그룹내에서 말단 사원부터 승진해 전무, 부사장, 사장과 고문 등을 역임하고 명예롭게 퇴임했다.
그는 그동안 전두환정권, 노태우정권 하에서 여러 차례 4,19학생운동 관련자 국가유공자 포상대상자로 선정되었으나 ‘군정하에서 어찌 민주화세력이 훈장을 받겠느냐”며 거절할 정도의 강골이었다.
 
경제인으로 국위선양과 외화벌어 자부심

4,19 혁명 당시 학생운동의 주역으로서 정계, 관계에 진출해 호가호위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는 유회장은 동아건설의 임원으로 해외근무를 하는 동안 160억불이나 되는 리비아, 이라크 등의 해외공사를 수주해 조국의 미래건설에 정, 관계가 아닌 경제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국위선양은 물론 외화를 벌어들인데 가장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동아그룹에서 퇴임했지만 최근에 다시 해외건설공사 수주 등을 통해 동아건설의 재기를 돕기 위해 해외출장을 다니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짬이 나면 국내외 안보관련행사에 참가해 북한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평양이 고향인 유회장은 1.4후퇴 때 14살의 나이로 남하해 온 탓인지 대북에 관해서 또한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내 군부지도자 몇 천 명 때문에 몇 천 만의 북한주민이 짐승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DJ의 햇볕정책이나 연방제같은 통일방안은 북한을 잘 모르는데서 나온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4월 혁명 48주년 기념행사에 모처럼 모습을 나타낸 유회장은 한국학생운동자연합회 회장 자격으로 인간안보학회가 주최한 ‘4,19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그 상징성’이란 춘계세미나에서 “이제 4,19 세대가 세계역사에 발맞춰 각계각층에서 산업역군으로 일익을 담당해 왔다”고 평가하고 “그동안 민주화가 추구해온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경제선진국으로의 도약을 통해 세계최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열정과 힘을 모으자”고 역설했다. <글/이종납 사진/김경록>

유영철 한국학생운동지도자연합회장 주요프로필

▲ 연세대학교 상학과 ▲동아건설산업(주) 근무 ▲대한통운 이사 ▲동아건설산업(주) 전무 ▲동아건설산업(주) 해외담당 부사장 ▲동아건설산업(주) 사장 ▲도로교통협회 수석부회장 ▲동아엔지니어링(주) 사장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 ▲서울시하키협회 회장 ▲동아건설산업(주) 부회장 ▲유엔50주년기념한국위원회 감사 ▲동아건설산업 고문
▲저서: 4월혁명사(공저)
▲상훈: 산업포장, 국민훈장석류장, 리비아최고공로훈장, 제19회 전국품질경영대회 우수기업체상가치혁신상대통령상

(이종납칼럼니스트)
이종납칼럼니스트 기자 ljn1124@hanmail.net
Copyright @2012 더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Copyright ⓒ

PC버전으로 보기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로 328 010-4667-9908 서울아00313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보도자료soc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