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엽 칼럼니스트 ] 지난 6월 20일 한·일 시민들이 다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장생탄광 앞에 섰다. 장생탄광 제5차 방문단. 이번에도 정부는 없었다. 정치도 외교도 결여된 그 자리에서, 시민은 외교의 주체가 되었다. 기억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기억 위에 연대는 뜨겁게 쌓였다.
1942년 장생탄광 붕괴 사고로 183명의 노동자가 바다에 수장되었다. 그 중 136명이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였다. 80여 년이 지나도록 유해는 회수되지 않았고, 한국과 일본 정부는 침묵했다. 그러나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시민들이다.
조덕호 대구대 명예교수와 최봉태 변호사가 이끄는 귀향추진단은 일본 시민단체, 다이버들과 함께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실패로 끝난 발굴에도 시민들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유해가 수습되고 고향에 안치될 때까지 한국과 일본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조 교수의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시민외교의 선언이었다.
장생탄광의 시민외교는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니다. 이곳은 ‘기억’을 매개로, ‘존엄’을 향해 나아가는 윤리적 외교의 장이다. 정부의 공백을 시민이 메우고, 정치의 무능을 연대가 덮는다. 시민들이 직접 유족을 만나고, 현장을 청소하고, 묵념하고, 진혼무를 추는 장면은 외교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외교는 더 이상 외교부만의 영역이 아니다. 장생탄광처럼 기억과 책임의 문제가 얽힌 사안은 시민의 윤리와 연대가 핵심 동력이다. 정부가 하지 않는 외교, 정치가 감당하지 않는 화해, 그것은 이제 시민의 몫이 되었다.
정부와 정치의 외교가 멈췄을 때, 시민은 기억의 주체로, 연대의 실천자로 외교의 빈틈을 메웠다. 이들이 보여준 것은 기술이 아닌 윤리로, 협상이 아닌 행동으로 외교를 완성해가는 가능성이었다.
한·일관계는 60년간 반복된 봉합과 갈등의 역사였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는 기억의 회피가 아니라 직면에서 출발한다. 장생탄광을 기억하고 유해를 발굴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외교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살아있는 예시다.
외교는 결코 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특히 역사적 책임과 인간의 존엄이 얽힌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제 묻는다. 누가 외교를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장생탄광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발걸음은 외교가 사람의 얼굴을 되찾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