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회장 별세

  • 등록 2009.03.29 21: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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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부에 희생, 재건 끝내 못이뤄

 
▲ 고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29일 오후 비운의 주인공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결국 "그룹 재건"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양 전 회장은 1947년 부친 양태진씨가 소유한 정미소 한 켠에 고무신 공장을 차리며 80년대 재계 서열 7위의 ‘국제그룹’으로 키운 한국 재계의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1921년 부산에서 태어난 양 전 회장은 부산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49년, 그의 부친과 부산에 국제고무공업사를 설립해 ‘왕자표 신발’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50년대 중반 무렵까지 무려 100개가 넘는 생산 라인을 갖춘 세계적 신발 공장으로 성장했다.

또 63년에는 신발류와 비닐 제품 생산업체 진양화학을 세워 70년대 초, 신발 수출 붐을 타면서 성장을 거듭했다.이후 직물가공업체 성창섬유와 국제상선, 신동제지, 동해투자금융 등을 잇따라 창업했다.

동서증권과 동우산업, 조광무역, 국제토건, 국제종합엔지니어링, 원풍산업 등을 인수하며 ‘재벌’ 반열에 올라 80년대 중반 국제그룹은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7위의 막강한 기업집단을 일궈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이후 1985년 2월 당시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은 자금난에 빠진 국제그룹의 정상화 대책을 발표한 뒤 곧바로 그룹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국제상사는 한일합섬에, 건설 부문은 극동건설에 매각되는 등 그룹은 1주일만에 "공중분해"됐다.

그후 정부 상대로 위헌 소송을 벌여 93년 7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의 다수의견으로 양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자금 유포사건 등에 휘말리는 한편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결국 재건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무리한 기업 확장, 비효율적 친족 경영과 파벌 등의 이유도 있지만, 5공화국 군사정부에 밉보여 "부실기업 정리", "산업 합리화"의 미명 아래 희생됐다는 분석이 국제그룹 몰락의 원인으로 회자되고 있다.

장남 양희원 ICC 대표와 사위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이현엽 충남대 교수 등이 유족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안실 20호(02-3010-2631), 발인은 4월1일 오전 9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김응일 기자 기자 skssk1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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