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박정희와 그가 사랑한 이현란씨와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 등록 2021.08.24 1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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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정희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박정희와 동거한 이화여대 출신 이현란의 사진(앞줄

맨 왼쪽). 박정희가 肅軍 수사를 받고 살아나온 직후

그의 용산 관사 현관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앞줄 가운데는 박정희의 바로 윗 누님 박재희 씨,

그 오른쪽이 박정희다. 수사를 받고 나온 직후라

박정희의 모습이 다소 초췌해 보인다.-출처 조갑제 닷컴에서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 이현란 역으로 출연한 배우 김애경

기자는 최근 강남의  유명한 기도원에 갔었는데 그 원장 목사님이 말하기를 지나가는 말로 " 박정희 대통령의 첫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을 했다.

박 대통령의 첫아들이라고? 박지만 씨가 아들인데 또 다른 아들이 있다고?

박정희 대통령의 첫 딸은 최근에 세상을 떠난 김호남씨 사이의 박재옥씨이고

그러면 그 첫 아들은 누구냐? 기자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원장 목사님은 그 사람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상당히 중요한 말이라 기자가 재차 방문하여 물었을 때 어느 장로가 와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것 뭐 스무고개 하나? 커다란 퍼즐을 맞춰야 하나?

헤어진 가족들, 이산가족 찾기에 기자가 뛰어 들어?

지금 대한민국이 위기이다.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인물 부족이다.

인물을 찾기 위해 가능성 1%라도 있으면 기자는 찾아야 할 형편이다.


그 아들은 육영수 여사와의 소생은 아닌것 같은데 그러면 그 아들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

기자는 박정희와 이대생이라는 글을 어디에서 본 것 같아 찾아보니 상세한 내용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청년 박정희와 이대(이화여대)생 이현란 이야기 개요>

박정희 대통령이 대위 시절에 친구 박경원 결혼식에 갔다가(1947년) 들러리로 나온 미모의 여대생을 만났다.

박정희는 한 눈에 반했다.

그 미모의 여대생 이현란씨는 원산의 갑부 딸로 북의 공산당이 싫어 남쪽으로 온 사람이고 그래서 박정희 얼굴 보다는 국군 장교가 좋아서 박정희를 가까이하게 되었고 (약혼식: 1947년 겨울로 추정,1948년: 동거 시작, 1948년 11월, 박정희의 옥중 메모, 1950년 2월 6일 가출)

*1948년 11월, 이현란씨에게 보낸 박정희의 옥중 메모: "얼마 후 김창룡이가 왔어요. 경위를 설명하고 미스터 박이 메모를 주라고 하더라면서 건네줍디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겠다. 이것 하나만 믿어 주라. 7기생의 육사 졸업식에 간다고 면도도 하고 아침에 국방부에 출근하니 어떤 사람이 귀띰해 주더라. 내가 얼마든지 차 타고 도피할 수 있었는데, 현란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안 갔다. 이건 나한테 얼마나 불리한 줄 아나?' 한 여인 때문에 안 갔다니… 그러나 난 괘씸했어요. 그것까진 또 괜찮아."-조갑제 닷컴에서-

그런데 청년 대위 박정희가 군내 남로당 숙군 작업에 걸리고 서대문형무소에 가면서 박정희를 싫어하게 되었고 박정희를 버렸다는 여성이다.

그가 이현란씨다

박정희와는 1948년부터 1950년 초까지 약 3년가량 사실혼 관계에 있었고 아이도 임신했었고 출산도 했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런데 그 뒤가 사뭇 궁금하다.정운현 기자( 2011년 까지 대한매일(서울신문 전신) 에 있다가 오마이뉴스로 감)가 2011년에 그동안 잊고 있다가 12년 전 (1999년 경)에 온 편지 뭉치를 공개 했는데 그 속에는 놀라운 일들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박정희가 용산 관사에 있으면서 남노당 군사책으로 김창룡 특무대에 잡혀갈 때 옆집에 평소에 친하게 지낸 김학림대위가 있었고 그런데 박정희는 고문을 당하며 군내에 있는 남로당 조직을 다 폭로하고 주위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나오는데 당시에 남로당에 가입한 많은 장교들이 처형을 당했다. 당시 사형 풍경은 트럭에 실려가 야산에 세워진 말뚝에 눈가리고 손 뒤로 묶여 총살형이 집행 되었다.

이것은 여태 다 공개된 내용들이다. 조갑제 닷컴 대표는 박정희 전기를 쓰며 박정희와 이대생 이현란에 대한 방송을 1년 전에 몇 편에 걸쳐 해 놓은 상태였다.

기자가 체크한 이현란씨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증언1>

<참조 2011년까지 대한매일(서울신문 전신)에 있다가 오마이뉴스로 간 정운현 기자가 쓴 기사>)https://www.google.co.kr/amp/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3fCNTN_CD=A0001566819


"박정희 동거녀 이현란, 아들 낳았다"

[발굴] 박정희 '좌익 연루' 수감 때 용산 관사서...생후 6개월 만에 병사

11.05.16 07:42l최종 업데이트 11.05.16 19:18l

정운현(jwh59)

이름도 짓지 않고 암 매장

숙군 폭로로 인해 '고(故) 박정희에 대한 저의 원한은 영원합니다'라는 김학림의 부인 강아무개씨가 전운현 기자에게 보낸 편지 뭉치


▲ '추신'에는 이현란이 낳은 아이가 생후 6개월 만에 죽자 용산 관사 뒷산에 암매장했다는 증언(붉은 상자 내)이 실려 있다. ⓒ 정운현

위 기사에서 일부 발췌

"그러던 중에 이여사(李女史/이현란)가 출산(出産)하게 되어서 광화문(光化門) 산부인과에 가서 생남(生男)하여서 제가 며칠 같이 있다가 퇴원하여서 이여사(李女史)는 육아(育兒)에 전념하였으나 약 6개월 후 병명(病名)은 몰랐었지만 사망(死亡)했었습니다. 작명(作名)도 안했었습니다. 그 때 이여사(李女史)가 한 말이 '너는 무슨 기구한 운명으로 애비 얼굴도 모르고 죽었느냐'고 하면서 슬피 울었었습니다.

옆 집에 있는 김학림 대위의 부인 강아무개씨는 남편이 곧 석방 될 줄 알았는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난 후 박정희가 고해 바침으로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해서인지 강아무개씨는 "고(故) 박정희에 대한 저의 원한은 영원합니다' 는 말을 편지 끝에 적어 놓고 있다

그 강 아무개씨는 박정희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6개월 뒤에 죽었다고 했다

<증언2>

한편 조갑제 닷컴에서는 '박정희가 사랑한 여인 李現蘭의 生前고백'이 있었다.

이현란씨는 박정희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李現蘭씨가 1987년 강인옥 기자에게 털어놓은 유일한 증언

https://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87965&C_CC=AC

정성환 기자 jsh-08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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