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 너머의 외교, 시민의 신뢰로 다시 묻다

  • 등록 2025.06.30 18: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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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60년, 시민의 기억이 만든 새로운 길



[ 김덕엽 칼럼니스트 ]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기점으로, 양국은 수교를 통해 실리를 중심으로 한 외교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국 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봉합"의 되풀이 속에 머물러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외교는 반복되었지만, 국민의 감정은 치유되지 않았고, 기억은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늘 ‘현실적 해결’을 말한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15년 위안부 합의, 2023년 강제징용 피해자 제3자 변제안. 그 어떤 합의도 국민적 신뢰를 획득하지 못했다. 왜일까. 그것은 정치가 외교를 ‘합의의 기술’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국민 감정이라는 구조적 층위를 생략한 채, 타협만을 반복한 결과이다.

윤석열 정권이 파면된 지금, 한일관계는 또 한 번 불확실성의 문턱에 서 있다. 문제는 단지 외교 기조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외교를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60년간 정치와 관료 중심으로만 설계된 외교의 구조 속에서, 시민은 언제나 배제되어 왔지만, 역설적이게도, 시민만이 관계의 연속성을 만들어왔다. 기억을 지키고, 문제를 고발하고, 화해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은 것도 결국 시민이다.

이제는 새로운 외교의 서사가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문제는 단순한 양자 간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기억, 책임, 신뢰,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이다. 

따라서 외교는 기술이 아니라 윤리의 영역에 가까워져야 한다.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이나 유해 수습 축소 논란은 단순한 외교 실책이 아니다. 그것은 외교가 윤리를 잃었을 때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한·일관계는 단절을 반복할 수 없다. 국경을 사이에 둔 이웃이라는 물리적 조건은 외면할 수 없으며, 경제·안보·기후·기술 등 협력의 영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넓고 깊다. 문제는 ‘이웃’이 아니라, ‘어떻게 이웃이 될 것인가’이다.

정권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신뢰는 단숨에 회복되지 않는다. 정치가 망가뜨린 외교를 회복하는 일, 그것은 이제 시민이 나서야 할 몫이다. 외교를 다시 사람의 얼굴로 되돌리는 것,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올해, 우리는 다시 묻는다. 60년 외교의 종착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기억을 지운 합의가 아닌, 기억을 품은 연대가 한·일관계를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논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김덕엽 기자 editorkim12350@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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