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를 왕으로 추대한 이괄

  • 등록 2010.10.30 07:57:17
크게보기

이괄(李适)은 1622년(광조 14)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나기 직전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광조 축출을 결심, 이귀(李貴)·김자점(金自點)·김유(金瑬)와 함께 군대를 일으켜 광조를 몰아내고 선조의 손자인 인조를 새 임금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란계획이 누설되자 합류 장소에 늦게 도착한 거의대장(擧義大將) 김유를 베려다가 주위의 만류로 그만두는 등 김유와의 갈등이 싹트게 되었다. 인조반정 뒤 한성판윤·포도대장의 벼슬을 받는 데 그치자 불만이 더욱 커졌다. 같은 해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북방에 파견된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의 천거로 평안병사 겸 부원수로 임명되었다. 왕에게 포차(砲車) 사용과 요충지 방어를 건의한 뒤, 평안도 영변에서 군사를 훈련시키고 성책을 고치는 등 국경경비에 힘썼고 3개월 후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봉해졌다.

인조반정 뒤 공신들간의 알력이 심해지면서 1624년 아들 이전(李旃), 한명련(韓明璉), 정충신(鄭忠信), 기자헌(奇自獻) 등과 함께 반란을 꾀한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괄은 인조의 신임을 얻고 있었으므로 심문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영변의 군중(軍中)에 머물고 있던 아들 이전(李旃)은 모반의 사실여부를 가린다는 명목으로 한성으로 붙잡혀 가게 되었다. 이에 쌓였던 불만이 폭발, 한성에서 파견된 의금부도사 고덕상(高德祥), 선전관 김지수(金芝秀) 등의 목을 베고 휘하의 1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모반 혐의로 한성으로 압송되고 있던 구성부사 한명련을 중간에 구출한 뒤 한성으로 진격, 황주·마탄·임진 등에서 관군을 잇달아 격파하고 한성을 점령했으며, 선조의 아들 흥안군(興安君)을 왕으로 세웠으나 다음날 뒤쫓아온 장만 등의 관군에게 파주 길마재에서 패하였다.
김민수 칼럼니스트 기자 ssk0102@hanmail.net
Copyright @2012 더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Copyright ⓒ

PC버전으로 보기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로 328 010-4667-9908 서울아00313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보도자료soc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