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曹操)와 양수(楊修)의 경우
위나라 조조 휘하에 양수라는 인물이 있었다. 양수는 비상한 재능의 소유자로 조조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는 조조의 셋째아들 조식(植)의 스승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을 약간씩 과시하는 경향이 있어 조조는 그다지 호의적으로 대하진 않았다. 일찍이 조조가 후궁 한 곳에 정원(庭園)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 정원을 돌아본 조조는 좋단 싫단 말 한마디 없이 붓으로 문에다 대고 "활(活)"자를 써 놓고 가버렸던 모양이다.
, |
사람들은 조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진의를 알지 못했다. 이때 양수가 나타나 조조가 쓴 글자에 "문(門)"자를 끼워 써 보이며 그 뜻은 넓다는 의미의 "활(闊)"이 됨을 말하고 정원을 좀 더 아담하게 개조하라는 속내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해 줬다. 정원을 꾸몄던 사람들은 서둘러 개조공사를 시작했고 얼마 후 조조가 다시 그곳을 찾게 됐다. 조조는 정원이 훌륭하게 다듬어져 있음을 칭찬하면서도 그걸 알아낸 사람이 양수라는 걸 알고 마음이 유쾌하질 못했다. 조조가 겉으로는 극찬했지만 마음속으론 자신의 모든 생각이 양수에게 낱낱이 드러나는 것만 같아서 찜찜했다는 말이다.
. |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조조가 세자를 누구로 정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큰아들 조비(丕)와 셋째 조식을 부르게 하고 성문에 당도하면 절대 통과시키지 말도록 명했다. 먼저 장남 조비가 부름을 받고 왔으나 성문에서 경비병이 들여보내 주질 않자 그대로 돌아 가버렸다. 이어서 도착한 셋째아들 조식 역시 경비병에게 제지당했다. 그러나 조식은 "왕의 부름을 받은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가야겠다"며 막아서는 경비병을 칼로 베고는 아버지 앞에 섰다.
. |
조식은 조조의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한 것이다. 해야겠다는 자세가 믿음직하다며 조조의 칭찬이 늘어진 건 당연했다. 그렇지만 그게 셋째의 스승이 가르쳐줬다는 걸 알고 슬슬 양수가 괘씸해진 것이다. 양수는 조식을 위해 답교(答敎)라는 문답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국가 대사에서부터 조조가 무엇을 물어보든지 간에 막힘 없이 술술 대답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모범답안 같은 거였다. 그래서 조조가 어떤 질문을 퍼부어도 조식은 언제나 쉽게 대답할 수가 있었다. 세자 자리엔 응당히 자기가 앉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장남 조비로서는 그런 게 못마땅했을 것이다.
. |
그러다 조비는 은밀히 조식의 측근을 매수해 그 문답서를 훔치고 조조에게 내보이게 된다. 조조는 자신이 무슨 질문을 하든 셋째가 너무도 쉽게 척척 대답하는 데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을 때다. 조조는 양수에게 아무리 걸출한 재주가 있더라도 세자 책봉 문제에까지 꾀를 부린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조조는 적당한 시기를 골라 양수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양수는 묘하게도 이때만큼은 조조의 심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 |
조조가 한중 사곡성에서 촉나라 유비와 일진일퇴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승산 없는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무렵이다. 이날 조조는 어려운 국면을 돌파할 무슨 묘수가 없을까 하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시종이 저녁상 들어왔음을 알렸다. 저녁 메뉴는 닭갈비였다. 배고픈 차에 허겁지겁 먹는데도 도무지 허기가 채워지질 않는다. 닭갈비라는 게 맛은 있지만 살점이 넉넉하지 않은 게 흠이다. 조조는 문득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닭갈비와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어 상념에 젖어들었다.
. |
세상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을 각오하고 철군해야할지, 아니면 이득 없는 싸움을 계속해야할지 도통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조조는 이런 점에서 자신의 처지와 계륵(鷄肋, 닭갈비)이 일맥상통한 데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때마침 장수 하후돈이 들어와 밤 암호를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 알려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조조는 워낙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던 터라 누가 집무실에 들어왔는지 무얼 말하는지 몰랐다. 좀 우스꽝스런 얘기지만 조조가 그냥 혼잣말로 "계륵"을 되뇌고 있는데 하후돈은 그걸 암호라고 판단해 전군(全軍)에 알리게 되는 오류가 발생한다.
. |
양수는 암호가 계륵이라는 걸 알고, 빼도 박도 못하는 조조의 심정을 헤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즉시 전군에 철군 명령을 내렸다. 답답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조조는 진중을 살피러 나왔다가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자신의 깊은 마음속 딜레마를 거울처럼 들여다보인 거 같아 모골이 송연했다. 곧바로 양수를 부르고 장수들 앞에서 계륵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며 군율을 어지럽힌 죄를 씌워 참수를 명한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조조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재사(才士)는 재능 때문에 망한다는 옛말이 양수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 |
요사이 언론엔 누가 뛰어나며 누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심중을 가장 잘 헤아린다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통상 보편적으로 인간의 의중은 낳고 키워준 부모가 가장 잘 알게 마련이다. 친구가 친구의 생각을 가장 잘 파악할 수도 있고, 성인이라면 연인이나 부부만큼 서로를 면밀히 아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잘 분석할 수 있다는 건 출세에 한 발짝 다가서는 능력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세계에선 상대의 마음을 너무 잘 꿰뚫어서 상대를 곤혹스럽게 한 끝에 모사(謀士) 양수의 예(例)에서처럼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들이 얼마만큼이나 이 당선자의 마음을 족집게처럼 읽고 저마다 능력을 발휘해 국민들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 줄지 이런 상관관계를 음미(吟味)하며 지켜 볼만한 일이다. |
이인석 기자 기자
moduplus2@hanmail.net
Copyright @2012 더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Copyr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