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공천은 이 대통령의 고육지계

  • 등록 2008.03.17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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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또 한번의 수모를 겪고 있다. 그가 그토록 염려하던 게 현실로 닥쳤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반자로 여겼던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피의 목요일"로 불리는 학살공천을 통해 수족이 잘리면서 만신창이가 된 모멸이 그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정권 재창출의 일등 공신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하다. 항상 원칙과 신의를 강조했던 박 전 대표이기에 배신감으로 인한 고통은 더더욱 클 것이다. 정말 정치라는 건 이렇듯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18대 총선 공천을 주도한 인물은 누구일까. 외관상으로는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과 강재섭 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3인방이 이번 공천 결정의 주체다. 그러나 껍질 하나를 벗기고 보면 모양은 아주 딴판으로 달라진다. 우선, 여기저기서 나도는 소문과 정황을 살펴보자. 한나라당 내에선 "이재오의 완전한 승리"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정권 2인자로 대접받는 이 전 최고위원의 막강한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1월 중순, 공천 소용돌이 속에서 나돌았던 "이재오 살생부"에 거명됐던 인사들 대부분이 탈락함으로서 그의 존재 위상이 생생하게 확인된 셈이다.

지난 6일 이 전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과 안가에서 만났던 게 언론보도에 의해 확인됐다. 다음날인 7일에는 안 위원장과 강 대표, 이 총장이 청와대로 들어가 이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사무총장의 경우 공천 국면의 중요한 과정마다 "핫라인"을 통해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직접 보고하는 이른바 "직보(直報) 시스템"을 운영한 것으로 기자들이 전한다. 정리하자면 이 대통령과 이 최고위원, 이 총장이 "개혁"이라는 명분을 이용해 입맛대로 한나라당의 물갈이공천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는 얘기가 된다. 내용을 그대로 놓고 본다면 대권과 당권 분리를 공언했던 이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것이다.

당내 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도왔던 인사들이 격분하며 공천 탈락에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전 대표의 좌장으로 공천에 불복하고 탈당을 선언한 김무성 의원은 16일 "한나라당은 이명박 기획, 이재오 감독, 이방호 주연의 밀실공천으로 3류 드라마를 찍고 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이것은 개혁공천이 아니라 개판공천"이라며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서 그는 "자신들이 당권을 잡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박근혜를 핍박하고, 김무성을 축출했다"며 격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친 이계와 친 박계의 공천 탈락 비율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걸 액면그대로 받아들일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중요한 건 공천 탈락한 지역구에 어떤 인물이 채워지고 있느냐는 거다. 실제로 지금까지 공천심사를 끝낸 224개 선거구 공천자 가운데 친 이명박계는 87명에 달하며 당선되면 곧바로 친 이가 될 중립인사까지 포함한다면 166명까지 늘어난다. 반면에 친 박근혜계는 43명에 불과하다. 공천심사 전 현역 의원 36명을 포함, 86명의 지역책과 함께 빵빵한 위용을 갖췄던 점을 감안하면 찌그러져도 너무 형편없이 찌그러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선거 캠프에서 활약했던 정치신인급 후보자들 중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은 거의 없다.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빈축과 함께 "형님 공천"으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이상득 의원의 공천도 문제 있다. 이렇게 공당을 사당화시켜 놓고도 표를 달라고 지지를 호소한다는 건 국민을 석두쯤으로 생각하는 발상이다. 정말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뭐가 공정한 잣대인지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항간에 "명계남(명박계만 남았다)"이란 신조어가 나돌아다닐 정도니 김무성 의원이 "개판공천"이라며 성토하고 있는 데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청와대 쪽에선 "친 이명박 인사들이 대거 공천된 만큼 당이 비로소 수중에 들어오게 됐다"는 말도 들린다. "표정 관리하느라 애먹는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명박 정권의 교만하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단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진통 없는 공천은 없겠지만 설움의 10년 세월을 함께 하며 정권교체를 위해 고군분투한 동지들을 이런 식으로 내치는 건 순리가 아니다. 권불오년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까먹고 지내는 이들이 많은 거 같다. "공천은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입으로 나불나불 대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나눠 갖기 위해 음흉한 술수를 부렸던 게 국민들의 눈엔 어떻게 비춰졌을 진 4월 9일 총선에서 판가름 날 일이다.
이인석(난세공명) 기자 moduplus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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