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 학무부 국장 이진호

  • 등록 2010.11.13 07: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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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李軫鎬)는 아관파천으로 친러파가 득세하자 유길준, 우범선, 이두황 등 명성황후 살해사건과 관련있는 인물들과 함께 일본으로 피신했다.1907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한 뒤 돌아와서 중추원 부찬의, 평안남도 관찰에 임명되었다. 관서 지방에 민족 의식을 고양하는 사립 학교가 많이 세워지는 분위기를 견제하고자 관립 평양고등보통학교가 설립되었을 때는 교장을 역임했다.1910년 경상북도 장관, 1916년 전라북도 장관, 1919년부터 1921년까지는 전라북도 지사에 임명되었다.

1919년 3·1 대한광복운동이 일어났을 때 총독부가 친일 관료와 지방의 지주들을 규합하여 자제단을 구성하자 전라북도에 전북자제단을 조직해 대한광복운동의 확산을 막았다.이후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 촉탁(1921), 조선중앙위생회 위원(1921), 조선구락부 발기인(1921)를 거쳐 1924년에는 총독부 학무부 국장에 임명되었다. 1934년에는 중추원 참의, 1941년에는 부의장, 1943년에는 고문이 되었고, 귀족원 의원에까지 올랐으며 태평양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친일 단체에도 적극 참여했다.
김민수 칼럼 니스트 기자 ssk0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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