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득공(柳得恭)은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가 되었으며 포천·제천·양근 등의 군수를 지냈다. 외직에 있으면서도 검서의 직함을 가져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서이수(徐理修) 등과 함께 4검서라고 불렸다. 첨지중추부사에 승진한 뒤 만년에 풍천부사를 지냈다.시문에 뛰어났으며, 규장각검서로 있었기 때문에 궁중에 비치된 국내외의 자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저서를 남겼다. 발해고(渤海考)에서 요동(遼東)과 간도를 한민족사의 무대로 파악했으며 고구려의 역사 전통을 강조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본격적으로 연구했고, 신라와 발해가 병존했던 시대를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로 파악했다. 발해고는 군고(君考)·신고(臣考) 등 9고(考)로 되어 있으나 권(卷)도 나누지 않은 단권(單卷)의 간략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발해사를 최초로 체계화시키고 이를 한국사의 체계 안에서 파악하였다.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는 단군조선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민족이 세운 21개 도읍지의 전도(奠都) 및 번영을 읊은 43편의 회고시로서 한민족의 주체의식을 되새겨 보려는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