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에 ‘대일 청구자금의 개인보상’을 위해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대표 김인희, 장선희)이 발족되었는데 이것이 최근 언론에 유포되고 있는 악소문의 화근이 되었다. 양 회장은 청구소송단이 발족됨과 동시에 방미해 국제문제 변호에 경험이 있는 마이클 최와 수임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클 최도 즉시 방한해 3일동안 전국을 돌며 유족회원들을 상태로 개인보상문제에 대한 향후 대책을 설명하는 등 문제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다. 이 무렵 마이클 최는 한국동포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교포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국제변호문제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청구소송단의 김 대표와 장 대표와의 갈등이 빚어지자 김 대표가 서울광역수사대에 ‘유족회원들을 대상으로 받은 회비를 편취했다’며 양 회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광역수사대는 지난해 1월 양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가정의 현금까지 압수한 후 사기용의자로 언론에 이 사실을 유포시켰다. 경찰주장에 의하면 “장 대표가 양 회장의 위임을 받아 당시 유족회원을 비롯해 유족회원이 아닌 사람까지도 개인보상을 해 준다며 소송비용 명목으로 15,000명에 대해 1인당 3만원씩 받은 것이 확인됐다”고 밝히고 “이중 일부는 수임비용으로 썼고 일부는 유족회 비용으로 지출했다고 했지만 양 회장이 마이클 최와의 수임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행위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유족회 내부에서도 “한일 과거사 문제는 1965년 당시 조약을 맺어서 끝났기 때문에 개인 청구 소송은 일본에 일체 승소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빌미로 돈을 걷는 것은 사기라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경찰에 힘을 실어주었다. 양 회장은 경찰조사에 응해 두 차례나 경찰에 나가 사실여부를 밝히는 한편 “공정과 사실에 입각해 보도해야 할 언론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단 한번도 확인하지 않고 특정인 죽이기에 나서는 언론의 행태를 용서할 수 없다”며 당시 연합통신사를 비롯한 관련 언론매체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기도 했다. 언론중재위도 양 회장의 진실을 받아들였지만 관련 언론사의 비협조와 무관심으로 오보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
그러나 양 회장은 계속된 경찰조사와 음해세력들의 공격으로 자신을 ‘상습사기꾼의 대표’로 몰아 기획수사에 들어갔다는 생각에 ‘국가에 대한 배신감’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두피가 함몰돼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양 회장은 “특히 일본에서는 대일보상 청구에 앞장서온 제가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우익들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78년에 일본내에서 국제문제를 다루는 다까키 변호사는 “양순임 회장은 지난 92년부터 20년간 대일청구 보상 촉구운동을 함께해온 동지고 전후보상문제 해결을 촉구해온 한국인의 상징이다. 지난 65년 청구권 협정 체결 후 개인보상 청구 재판에서는 졌지만 한국인에 대한 피해보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지난 2000년 독일의 경우 일부 보상한 전례가 있다. 일본도 그렇게 해야 한다.”며 양 회장에 대한 돈독한 우의와 신뢰를 보여주여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양 회장은 “당시 국제문제에 경험이 많은 마이클 최가 대일청구 개인보상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자세한 경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실수지만 40여년동안 대일청구 문제 해결에 앞장 서온 제가 유족회원들의 피와 같은 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주장을 반박했다. 양 회장은 현재 경찰조사를 성실히 받고 어느정도 사건의 진실을 밝힌 상태이지만 한번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양순임 회장은 "더이상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유족회를 말살하려는 모든 세력들은 만행을 중지하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시 대일청구를 통한 개인보상 실현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