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다양한 카페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도 있지만, 유명 브랜드를 내걸고 있는 대규모의 카페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한 카페들의 커피는 소위 ‘브랜드 값’과 ‘자릿세’가 붙어 가장 싼 커피가 5000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자랑한다. 이것은 분명 가격만큼의 맛을 제공할 것이다. 순수하게 커피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유명 브랜드 커피를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들은 커피의 가격이 비싸질수록, 그들의 부와 가치 또한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유명 브랜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번 돈을 쓰는 것을 비난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례를 들어보겠다. 지난 7월 21일 새벽 수원에서 한 30대 남성이 중학생 무리에 의해 집단 구타당하여 숨졌다.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자리에 남성의 6살 난 아들이 있었고,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구타당하고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든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30대 남성에게는 세 자녀와 아내, 노모가 있는데 현재 그의 가족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반 지하 전셋집에서 전기, 가스가 끊긴 채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지속적인 수입이 끊긴 그의 가족은 그의 아내가 일주일에 약 2만원씩 벌어오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주일에 2만원, 즉 하루에 약 2500원 꼴이다.
이 사례 속에서 가장을 떠나보낸 가족에게 5000원은 이틀 분의 생활비이다. 세 아이와 여자 둘이 생활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유가족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수면 깊숙이 가라 앉아 표면조차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가 매일매일 마시던 커피를 오늘 하루 마시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추위에 떨며 내일을 걱정해야 할까?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허기가 질까? 그런 사람들은 아주 드물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드러나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의 실상이자, 돈의 가치이다. 누군가에게는 5000원이 하나의 사치이자 여유인 반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절박함이다. 돈의 가치는 그 돈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를 달리한다.
우리가 오늘 하루 커피 브레이크의 여유를 포기한다면, 한 가족의 하루 분 끼니가 해결된다. 이것은 분명 돈이 보다 가치 있게 쓰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외된 이웃을 찾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중 매체의 발달에 따라 클릭 몇 번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카페나 캠페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여유를 선택하지 말고, 시간을 조금만 더 들여 소외된 가족을 선택한다면, 커피 한 잔이 한 가족의 희망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의 외적 가치는 그대로이겠지만, 내면의 가치는 그 빛을 더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