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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투쟁꾼 여동활씨, 박정희 대통령을 매도 하지말라!

 
가장 큰 공적을 남긴 대통령,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등을 묻는 수많은 여론조사의 결과는 식상할 정도로 거의 동일하다. 국민 10명 중 7~8명의 지지와 존경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쏠려 있다. 더욱 그것은 김영삼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까지 3대에 걸친 ‘부정(否定) 세월’을 도도히 통과하면서 자리매김되었다는 점에서 평가의 진실성에 지존(至尊)의 가치를 부여해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반대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지지와 존경의 대부분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수의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을 떨치고 일어나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마련. 박 대통령을 향한 지지와 존경에는 육영수 여사의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좋아하는 사람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에 따라 ‘생기는 것’ 없이 박 대통령 내외를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동행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좋아하는 사람들 인터뷰’ 시리즈를 마련했다. / 편집자 주


박 대통령을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하지 말라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 왔네~~”
휴대전화 속에서 울리는 힘찬 ‘나의 조국’ 멜로디가 그의 정체성을 간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새시대 새물결 중앙본부장 여동활씨(呂東活 53세ㆍ경북 경산시).
‘용산참사’ 등 시국사건에 대한 시위로 어수선한 서울의 한복판 세종로 거리를 의경 대열이 꽉 메우고 있던 지난 4일 오후, 그를 만난 곳은 세종문화회관 뒤편 조용한 골목길에 자리잡은 돼지갈비집이다.
박 대통령 관련 행사가 열리는 곳,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가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사는 곳은 경북 경산이지만, 활동무대는 ‘전국구’인 ‘아스팔트 전사’다.
애국세력으로 지칭되는 보수 우파집단의 약점은 “엉덩이가 무겁다”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것. 제 주머니 털어가며 동가숙서가식하는 열혈 전사의 외침에는 남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대한민국을 환골탈태시킨 분 아닌가. 오늘의 우리가 누구 덕에 사는가. 자기 잘났다고 떠들면서 박 대통령을 폄훼하는 자들을 보면 나는 피가 끓는 사람이다. 한국은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는 나라다. 제사가 무엇인가.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다. 한국인이라면 그 분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전에는 박 대통령과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나.
“솔직히 박 대통령 시절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민생고 해결에 전념하느라 현실정치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과 박 대통령을 간략히 비교해서 평가한다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의 치적을 별로 거론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지도력에 비교할 만한 다른 대통령이 있냐고 감히 반문하고 싶다. 박 대통령을 다른 대통령과 비교하지 말라. 제발 부탁이다.”
-육영수 여사와 다른 영부인들도 비교해서 평가한다면.
“어떻게 다른 영부인들과 비교하란 말인가. 다른 영부인들이 TV에 얼굴을 비추면 사람들이 꼭 육 여사와 비교해서 이러쿵저러쿵하기 때문에 처신이 어려워 ‘방콕’(방에 콕 처박혀 두문불출하는 일)이 상책이었을 것이다. 다른 영부인들이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까지 육 여사가 책임질 일은 아니지 않은가.”

“박 대통령을 매도하지 말라”는 현재진행형

여동활씨는 고교 시절 동대구역에 내려온 박 대통령을 먼발치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작은 키의 대통령이 보무가 당당해 “아, 저 작은 사람에서도 저런 모습이…”라는 생각과 함께 위대한 지도자다움이 느껴지더라는 것.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여동활씨가 언론에 포착된 것은 2004년 여름, 그가 운영하는 대구가톨릭대학과 경일대학 인근에 있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하양시장의 화장품점 간판에 ‘더 이상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매도하지 말자’는 펼침막을 올리고부터였다. 화장품점 간판의 ‘박 대통령’은 분명 이색적인 등장이었고, 그래서 정치색을 빙자한 상술이라는 의혹과 오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박 대통령이 반대세력을 겨냥하여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하고 일갈한 것처럼 “내 가게에 돌을 던져라”하는 외침을 품은 듯한 격문(檄文)의 대단한 배짱과 오기가 더 주목을 받았다.
 
▲ 고교 시절 동대구역에서 박 대통령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는 여동활씨. ⓒ 좋아하는 사람들 
-‘왕비화장품’ 간판 자리에 ‘더 이상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매도하지 말자’는 펼침막을 걸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희한한 질문이다.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니까 이 민초라도 한마디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 당시 노무현 정권이 얼마나 혹독하게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였나.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펼침막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내 가게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술 먹고 횡설수설하는 사람 외에는 전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분명한 반감을 가진 자가 정식으로 간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면 대화로써 풀어나가려 했다. 속으로는 진짜로 욕하는 놈들과 맞짱 한번 붙고 싶었다. 내가 사는 곳이 경상도여서 그런가 싶어 나중에 ‘새시대 새물결’ 운동본부 출범식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했다.”
-혹시 박 대통령이나 육 여사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가.

“대단한 인연이다. 그분께서 일구어놓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한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이거보다 더 큰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품점의 펼침막을 내리고, 그후 오프라인 활동에 전력투구해 왔는데.
“간판을 내린 것은 때가 되어서 그런 것이다. “박 대통령을 매도하지 말자”는 것은 끝난 얘기가 아니다. 가게를 그만두고 서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박 대통령을 모욕하는 집단에 마주서기 위함이다. 한줌밖에 안되는 소수가 다수를 흔들고 있다. 이건 민주주의도 아니다. 나같은 사람이 ‘순한 양’으로 돌아갈 때가 되어야 민주화의 달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구로공단 공돌이 출신. 힘들어도 꿈이 있었다”

오늘의 중장년층은 박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세력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산업화 세대라는 대명사가 따른다. 여동활씨는 70년대 산업현장에서 땀을 흘린 산업화 세대의 ‘본토박이’다. 일할 곳이 없었던 유휴노동력을 대거 흡수한 산업화의 거점이 공업단지였고, 여동활씨도 고교 졸업 후 상경해서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섬유, 봉제, 가발업종에 매달려 왕성한 근로의욕을 불태우며 청춘을 바친 세대로부터 ‘한강의 기적’은 비롯되었다. 이들은 열악한 근로환경에도 힘든 줄을 몰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을 진짜로 힘들게 한 것은 공순이, 공돌이라는 비칭(卑稱)과 조소(嘲笑)가 아니었을까. 이들에게는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이라는 찬사가 따라붙는가 하면,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처럼 자본가의 착취에 희생되는 비참한 인간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오늘날 디지털기업 7천여 업체가 입주해 있는 대규모 디지털단지로 변한 구로동. 그 시절의 노동을 착취와 억압으로 보는 비틀린 픽션의 시각이 있는가 하면 팩트(fact)를 확연히 보여주는 논픽션도 있다.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가 취직을 하고 산업체 부설 야간학교에서 공부하며 뒤에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신경숙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텃밭이 구로공단이었다. 작가 신경숙이 청춘을 보낸 그 시절을 의연히 밝히고 있듯이, 여동활씨 역시 공돌이였음을 당당히 말하고 있다.

-구로공단 시절을 돌이켜본다면.
“군대 가기 전까지 섬유업체에서 일했다. 입대해 일등병 작대기 두개 달 무렵 10.26 소식을 듣고 충격받았다. 무언가 산산조각나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때 우리의 꿈이 박정희 대통령이었고, 그분이 꿈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단 시절 힘들지 않았나.
“엄청 춥고 배고팠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세상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고달프지가 않았다. 수출 날짜를 맞추어 야근을 해도 회사가 크고 나라가 커진다는 보람을 느꼈다. 힘들어도 꿈이 있고 희망이 보일 때는 고달프지가 않은 법이다.”
-조세희의 <난쏘공>을 읽어보았나.
“안 읽었다. 안 읽었지만 무슨 소설인가는 알고 있다. 그따위 장타령에는 비전이 없다. 대체 뭘 말하자는 건가. 노동자가 불쌍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불쌍한 것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들 아닌가.
-착취당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
“그 당시 싼 임금을 노동자 착취라고 그러는데, 그런 일자리도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게 더 큰 문제 아닌가. 노동자의 권익을 추구하는 노동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돈만 더 준다면 내가 원하는 회사로 가는 거다. 착취는 무슨…. 저임금의 노동자를 불쌍하게 보고 동정하는 것은 모욕이다. 우리가 불쌍하면 당신이 우리에게 돈을 주어보라. 말로만 떠들지 말고 돈을 다오. <난쏘공> 같은 패배주의자의 넋두리가 노동자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는가. 전혀 그건 아니다. 까불지 말라. 남의 인생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
-노동 현장이 열악했던 것은 사실 아닌가.
“맞다. 그러나 힘든 것이 문제가 아니다. 죽어라고 일하고 봉급 못받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회사가 망해 부도내고 도망가는 사장들이 많았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분명한 것은 회사가 망했고 돈이 없어 사장이 도망갔다는 사실이다. 그런 회사들이 노동자들을 눈물나게 했다. 그런 노동자들을 도시산업선교회가 현혹했다. 그들은 불쌍한 노동자들을 동정하면서 산업현장을 파괴시켜 나갔고 유명해졌다. 요는 그것이다. 그들은 노동자를 돕는 척하면서 전혀 도운 것이 자기들만 유명해졌다.”
-당시의 노동 경험이 그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기회는 모두에게 분명히 있었던 시대였다. 나도 그 이후 여러 형태의 자립과정에서 약간의 자본을 만들어 조그마한 섬유무역을 하다 실패를 맛보았다. 기업이 얼마나 힘들게 생존하는가를 체험했다. 해보니까 기업인들의 애환을 알 수 있더라. 예나 지금이나 가장 애국자는 바로 기업인이라고 생각한다.”
-화장품 판매 자영업을 그만두었는데 현재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고 있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돌보는 책임과 박 대통령 관련 사회활동 두가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현재는 편안히 쉬고 있다. 시대가 좀 쉬어가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웃음)

“그래도 아이들을 맨땅이 아닌 잔디밭에 눕혔다”

이쯤해서, 왜 그가 박근혜 전대표를 추종하는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박근혜 이야기를 끼워넣을 의도가 없었는데 2007년 박근혜 전대표가 영남의 한 대학교를 찾아갔을 때 반대시위를 하는 ‘한총련 아이’들과 맞짱뜬 ‘무용담’을 강조할 만큼 그는 가슴 뜨거운 남자였다. 이렇다. 시위하는 학생들을 그가 야단쳤다. 그러자 바로 “이 씨×놈”이라는 욕설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아들같은 아이들에게 욕을 먹고 얻어맞다니! 그는 한꺼번에 덤벼드는 학생들을 어깨로 받아 넘기고 발길로 막아 순식간에 너댓명을 자빠뜨렸다. 운동을 배운 것도 아니고, 언젠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만 돼 있었다. 너댓명이 나동그라지자, 이쪽도 여동활씨의 뒤에 동지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지라 한총련이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맨땅이 아닌 잔디밭에 눕혔다”고 말하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새시대 새물결 동지들은 “밖에서는 잘 싸우는 투견(鬪犬)이지만 집에서는 온순한 강아지”라고 그를 말한다. 부인이 미인이고 내외간이 정답더라고.
그러나 그는 외로워 보인다. ‘외로운 아스팔트 전사’ 이미지가 강하다.

-팬카페 박사모에서 강퇴, 한나라당 게시판에서도 강퇴. ‘우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우군? 우군은 맞다. 총론은 같고 각론의 차이다. 성격 차이도 있고.”
-여동활은 욕쟁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맞다. 적당한 타협, 기회주의 처신을 보면 격분을 이기지 못해 욕을 했다가 강퇴를 당한다. 박사모 영구 강퇴, 한나라당 강퇴. 가는 곳마다 강퇴 전문이다.” (웃음)
-팬카페 혜울 회원, 박애단 카페 개설 등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좌충우돌하는 방랑자 같은데.
“나는 논객이 못된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 체질이다. 그걸 확실히 알게 되기까지 갈등과 마찰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한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할 사람들 아닌가. 잠시 헤어져 있을 뿐이다. 시냇물이 갈라져 흘러도 강에서 만나고 바다에서 만나듯이 우리는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
-여동활씨의 현주소는 새시대 새물결이다. 이 조직을 광주에서 결성했다고 말했는데 장소를 광주, 그것도 김대중컨벤션센터로 선택한 것이 흥미롭다.

“호남도 대한민국이다. 정당한 일을 하는데 누가 반대하겠나. 오히려 보수집단에서 반대하더라. 대단한호응을 얻었다. 1부 한시간 동안 새마을 관련 강의를 했는데 경이로운 눈으로 공감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농촌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겠다는 진심을 보고 참석자들 모두 숙연했다.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 새시대 새물결 창립은 호남에서 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광주에서 했다.”

-“여동활은 계산이 없다. 조절 밸브가 없다. 순진하다. 단점도 많다. 언론에 뜨니까 흥분도 한다. 자기가 대단한 줄 안다. 그러나 여동활은 희생자다. 시간과 인생을 쏟아붓고 있다” 누군가 이렇게 평한다면 무어라고 말하고 싶은가.

“계산을 생각했다면 과연 그런 액션이 나올 수 있나. 언제 언론이 띄워주었다고 말하는가. 그동안 제대로 된 언론이 있었나. 제대로 된 언론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혼탁한 세상은 없었다. 여동활을 띄운 것은 언론이 아니고 민초들이다. 민초들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정치권에 항거하는 표시의 일부로 여동활을 잠시 지목했을 뿐이다. 나도 단점이 많은 인간이지만, 흠집투성이 정치권이 얼마나 추잡한가. 분명히 항거를 해야 될 시점에 아무도 항거를 안하니까 내가 했을 뿐이다. 흥분해서 육탄전을 마다하지 않지만 그러나 거기에 희생이라는 과분한 말을 붙여선 안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존재케 한 호국영령과 애국선열들을 모욕하는 거다. 나는 민초가 좋다. 동서남북 떠들고 다니니까 정치권이나 우군, 적군 모두에게서 잡초 취급을 받고 있다. 좋다. 잡초다. 나를 밟으려면 얼마든지 밟고 가라. 민초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제발.”
 
▲ 그의 휴대전화 속에 울리는 ‘나의 조국’ 멜로디가 새시대 새물결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 좋아하는 사람들 
-새시대 새물결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근본 취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계승이다. 대한민국을 환골탈태시킨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계승 발전, 승화시키자는 범국민운동 단체다. 현재 대표직은 5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신 현경대 전의원께서 중책을 맡아 이끌어가시고 나는 중앙본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새시대 새물결에 젊은층을 참여시켜 역사와 시대정신을 계승할 계획은 없나.
“엄청 답답한 현안 문제다. 지상 과제다. 그러나 분명히 한다.”

“이명박 정권은 고장난 네비게이션”

-지난 연말연시 국회에서의 몸싸움을 보면서 느낀 한국 정치의 현실은.
“빌미를 제공한 여당에도 책임이 있고, 아직도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야당에 더한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을 우습게 알고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부끄러운 의원들이다. 아직도 반성이 없다.”
-노무현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상실하고 권력에서 밀려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 한가지만 지적한다면.
“노무현 5년 동안 대한민국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모조리 분열시키고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으로 몰고 갔다. 그동안 일궈놓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뒤집으려고 작정한 정권이었다. 그것을 알고 국민은 정통 애국세력에게 권력을 주었다. 국민의 힘으로 정권을 다시 찾았으면 민의를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어떤 민의를 배반했다는 말인가.
“정권교체는 친북좌파를 궤멸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어물쩡 기회를 놓쳐버려 그 잔당이 설치고 있지 않은가.”
-보수 우파 애국단체들의 분열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렇다. 노무현 정권 때와 또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가 이명박 정권에 영합하고 있지 않은가. 정권교체의 성과를 독식해 버려 대한민국 정부를 개인 회사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자기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보수 집단을 사유화하고, 그렇지 않은 보수 집단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다. 그뿐인가. 박근혜 전대표를 지지하는 네티즌 600~700여명이 벌금실형을 선고받았다. 울화통이 치민다. 노상에 퍼질러앉아 대성통곡하고 싶다.”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보는가.
“야비한 기회주의 정권이다. 리더십이니 뭐니 거창한 말을 말자. 경제를 이끌어가는 능력 따위도 말하지 말자. 양아치와 다를 바 없는 패거리 정치다. 한가지만 말하겠다. 그린벨트 허물고 4대강 강바닥이나 파면서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대한민국의 정통세력을 대변하는 정권으로 보지 않는가.
“노무현 정권이 망한 것은 과거를 부정하고 정통세력에게 덤볐기 때문이다. 작살이 났다. 이명박 정권으로 대체되었지만 보수 우파 애국세력의 몸통이라고 볼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을 작살낸 세력의 중심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던가. 그는 무임승차했다. 게다가 지금의 이명박 정치는 대한민국 역사발전의 방향도 아니다. 고장난 고물 네비게이션이다.”

“박 대통령은 이 나라 국민이 너무 불쌍해서 하늘이 내려주신 분인 것만 같다”

-박 대통령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그분의 확고한 국가발전 의지가 없었다면, 그리고 인기만 생각하셨다면 그런 강한 정치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지나고 보니 박 대통령이 옳았다’는 의견을 피력해 주셨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민주화? 글쎄…지금 북한을 보자. 우리 한반도의 반쪽 북한을 똑바로 쳐다보면 대한민국이 보이지 않겠는가.”
-박 대통령이 독재했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독재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독재가 아니면 어떤 시대였다고 생각하는가.

“그때 그 상황에서 독재라니. 우리 부모님에게 박 대통령께서 독재해서 못살겠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살기에 고통을 받는 서민대중이 박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다. 박 대통령 시절 부귀영화를 누렸던 인사들은 오히려 좌파정권의 눈치를 보고 협력도 했다. 기막힌 일이다.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분에게 독재를 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를 묻고 싶다. 민주주의가 뭔가. 반대세력이 말로만 떠드는 정치, 선전선동의 정치, 대통령 아들과 측근이 부패 비리로 줄줄이 감옥에 가는 것이 민주주의란 말인가. 박 대통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분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물질적 바탕을 마련해놓고 가신 분이다.”

-박 대통령의 가장 훌륭한 점을 한가지 꼽는다면.
“먹고 살게 해주시고, 외국에 나가 얼굴 들고 ‘나 대한민국에서 왔소’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우리는 6.25라는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 국가다. 전 국토가 폐허로 변해 도대체 뭐가 있어야 먹고 살지,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냈지만 지독한 가난은 피할 길 없었다. 힘없고 가난한 나라 국민은 어디를 가도 서럽고 대접을 못받게 마련이다. 빈곤으로 찌든 이 나라를 선진국 문턱으로 밀어올린 분이 박정희 대통령 아닌가. 역사의 무수한 수난을 겪은 이 나라 국민이 너무 불쌍해서 하늘이 내려주신 분인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 대통령은 천운(天運)이었다.”

여동활씨 인터뷰는 4일의 만남에 이어 그가 거주지인 경북 경산에 내려간 뒤 한차례의 이메일 교신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뒷모습은 역시 ‘외로운 전사’였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 그분이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못된다”고 쓴웃음을 짓는 그의 표정에서 읽게 되는 것이 흡사 박정희 대통령의 고독한 정열 같은, ‘여동활 이미지의 발견’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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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 날(4월7일)에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코로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며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는 “총선 D-8일인 오늘(4월7일)이 보건의 날인데 코로나19로 정부 기념행사가 연기 된 것”에 유감을 표하고 “오히려 ‘1주일을 보건의 날 기념 건강주간’으로 정해 대대적인 보건 관련 행사를 벌여 코로나로 인한 국민의 보건의식에 경각심을 일으켜야 한다”며 “이 기회에 전 국민이 손 씻기 등 깨끗한 위생생활을 습관화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 시키는 행위들을 반성하고 불편하더라도 친환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인터뷰 하는 허경영 대표> 허대표는 “코로나는 인간의 욕망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인간들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고 했다. 허대표는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즉시 유튜브 공개 강연이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는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고 수시로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제안한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 18세 이상 국민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는 공약이 법으로 제정될 수 있도록 과반수 151석 이상을 국가혁명배당금당에 몰아 달라고 했다. <허대표의 기자회견을 열심히 경청하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당원들> 김동주 국가혁명배당금당 기획조정실장은 “코로나가 인간의 끝임 없는

지금이라도 외국인 입국을 차단하고 대한민국 국민들과 의료진을 보호하라.이은혜 (순천향대 의과대학 교수)
대한민국의 의료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국민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외국인 입국을 차단하라 해외에서 유입된 감염성 질환에 대한 방역관리의 기본 원칙은 ‘해외 유입 차단’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 7차례 권고를 무시한 채 소위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중국발 입국을 차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였고 이제는 거꾸로 중국의 33개 성(省)과 시(市), 그리고 18개 자치구에서 각기 다른 기준으로 한국인 입국 시 격리 조치를 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를 선두로 유럽 전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애초에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는 이제 와서 유럽발 입국을 차단할 명분이 없다. 궁여지책으로 22일 0시부터 유럽발 입국자에 대한 ‘특별입국절차’로서 코로나바이러스-19 검사를 의무화했다. 시행한 첫날인 22일 입국한 1,442명 중에 무려 152명이 의심 증상을 보였고, 23일 신규 확진자의 21.9%가 유럽 등에서 입국한 ‘사람’들이며, 이는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박능후 장관 말대로 문 열어놓고 모기 잡겠다는 것인데 온 국민이 모기에 왕창 뜯겨서 죽어 나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