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李舜臣)은 1591년 정3품 당상인 절충장군(折衝將軍)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발탁되어 임명되었으며 전쟁을 대비하여 휘하 각 진의 실태를 파악하는 한편, 군대와 군량미를 확보하고 거북선을 건조하는 등 군대를 강화하였다.1592년 음력 4월 13일 일본군 15만 명이 함대 700척으로 오후 5시경 부산포를 침략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이순신의 전라좌수영에 일본군 침략 소식이 전해진 것은 원균(元均)의 공문이 도착한 16일 밤 10시였다. 즉시 조정에 장계를 올리고 경상, 전라, 충청도에도 공문을 보냈다. 우선 휘하 병력을 비상 소집하여 700여 명을 모아 검열을 하고 방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전열을 정비한 전라좌수영 소속 함대는 음력 4월 29일까지 수영 앞바다에 총집결시켰다. 전라좌도 바로 전까지 일본군의 침입이 도달하고 있었고 30일 전라우도 수군이 도착하면 전투를 벌이겠다는 장계를 올렸다.음력 5월 7일 정오 옥포를 침략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모두 26척을 침몰시켰다. 전투는 8일에도 계속되었으며 적진포에서 왜선 13척을 침몰시켰다.음력 5월 29일 노량으로 함대를 이동하였으며 원균의 경상우수영군을 만났다. 이날 사천 선창에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적선 30여 척을 쳐부수었다.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큰배 36척 중간배 24척 작은배 13척을 만나 전투가 벌어졌다. 학의 날개처럼 배들이 진을 치고 지자총통, 현자총통, 승자총통 등을 발포하여 적들을 괴멸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포격 후 돌진하여 적함을 깨뜨리고 배 위에서 전투를 벌여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9일 안골포에 적선 40여 척이 정박해 있다는 보고를 받아 10일 학익진을 펼치고 진격하여 왜선 59척을 침몰시켰다. 1593년 음력 8월 1일 조선 조정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하고 본직은 그대로 겸직하도록 하였다.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백성을 모으고 소금을 굽고 곡식을 비축하여 튼튼한 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1597년 음력 9월 16일, 일본군 수백 척의 이동 정보를 접한 이순신은 명량 해협에서 대적하기 위해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출전했다.명량 해협은‘울돌목’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밀물과 썰물 때에는 급류로 변하는 지형을 이용하여 새로 건조한 1척을 추가한 13척의 전선으로 일본 함대를 유인하여 이 해협에서 좌초하도록 하는 전술을 구사하여 333척의 일본 함대를 맞아 31척의 전선을 격파하였고 92척을 파손 및 대파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