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선(宋秉璿)은 1867년 충북 옥천의 이지당(二止堂)에서 시작된 강회활동을 시작으로 1905년까지 전국 각지를 순례하면서 143명의 사우와 1,100여 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양성, 규합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제국 시대 일제의 침략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배양하고 국권회복의 토대를 마련했다. 1877년부터 1905년에 이르기까지 20여 차례가 넘는 상소를 통해 무분별한 개화정책과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를 개선하고자 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을 막고자 상소운동을 전개하여 정부를 상대로 내정의 정비, 강력한 군사력 배양, 외세의 척결을 주장하여 시정에 반영시키고자 노력하였다. 1884년의 신사봉사 8개조를 통해 대내적인 안정을 꾀하고 일제의 세력을 철저히 배격하여 국권회복의 토대 마련을 주장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늑결되자 2차례 상소를 통해 을사늑약의 파기와 을사5적을 처단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고, 주권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각국의 사신들에게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려 외교관계를 이용하여 무효화를 시도하였으나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고조 광무제를 직접 만나 일제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고자 1905년 12월 한성으로 상경하여 고조 광무제와의 독대를 통해 일제에 맞설 수 있도록 군사력 양성 등 10가지 시책을 건의하여 조국을 구하고자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