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용(李埈鎔)은 1907년 8월 14일 영선군(永宣君)에 봉해져 종1품 숭정대부의 자품을 받고 대한제국 육군 참장(參將)이 되었으며, 12월에 이화대수장(李花大綏章)을, 1908년 9월 서성 대수장(瑞星大綬章)을 차례로 받았다.1909 - 1910년 친일 단체 신궁봉경회 총재를 맡아, 한국의 건국 시조인 단군을 일본 건국신화의 아마테라스와 신궁에 함께 배치하여 한국 역사를 일본 역사에 종속시키려고 하였다. 1910년 8월 5일 종친으로 가장 높은 자품인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1910년 8월 27일 대한제국 최상위 훈장인 금척대수장(金尺大綏章)을 받았으며 일본 메이지 일왕으로부터 훈1등 욱일장을 수여받았다. 1912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한일 강제 병합 뒤 일제는 누구보다도 먼저 이준용에게 은사금을 주었다. 1910년 8월 중추원 고문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