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선(禹範善)은 1876년 무과 시험에 급제한 뒤 황해도 지역에 배치 받아 근무하다가, 1881년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었고 별기군에 참여하면서부터 일본을 배후로 둔 개화 세력과 가깝게 지냈으며 명성황후와 대립하여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1894년 일본군이 명성황후 세력을 실각시킨 뒤 개화파가 집권하자 군국기무처에서 갑오개혁에 참여했으며, 1895년 일본의 주도로 훈련대가 창설되었을 때 이두황, 이주회 등 친일파 군인들과 함께 대대장을 맡았다. 명성황후의 반일, 친러 노선에 반발한 일본 공사인 미우라 고로는 훈련대의 간부들과 함께 명성황후 살해 계획을 세웠다. 우범선은 훈련대 군인 동원의 책임자였으며 명성황후의 소각된 시신을 마지막으로 처리하는 과정에도 가담했다.이듬해 아관파천이 일어나면서 김홍집 내각이 몰락하여 일본으로 피신했다. 도쿄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사카이 나카를 만나 혼인하였다. 혼인 후 1903년 구레로 이사한 뒤 집들이를 하던 날 망명해 있던 고영근에게 암살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