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철(羅喆)은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였으나, 강진의 오기호, 부안의 이기 등 호남 출신의 지식인들과 함께 비밀 조직인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고 일본에 건너가 동양 평화를 위한 단식농성을 하는 등 일찍부터 민족주의적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을사늑약이 늑결된 뒤에는 을사오적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나철은 이후 점차 한일 강제 병합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민족 종교 운동으로 관심을 돌려 1909년 1월 15일 한성부에서 대종교를 창시했다. 경술늑약 이후로는 일제의 박해를 피해 교단을 간도 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때 서일을 비롯한 대종교인들이 독립 운동에 대거 뛰어들었다.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수행하다가 자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