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배(崔鉉培)는 1910년 5월부터 3년간 매주 일요일에 개최한 주시경(周時經)의 강습원(講習院)에서 한글과 국문법을 배우고 독립사상을 고취받았다. 1925년에 일본 경도(京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졸업하고, 1926년 동 대학원에 수학하는 중 조선민족갱생(更生)의 도(道)를 저술하였다. 이 저서에서 한국민족이 다시 독립하는 방도가 다각적으로 연구되었다. 1926년에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1937년까지 재직하다가 1938년 2월에 안재홍(安在鴻) 등 기독교 청년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자들의 단체인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의 독립사상 고취운동으로 일시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연희전문교수직에서 강제 해직되었다. 한글 연구에 정진하여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에 가입해서 1929년 107명으로 구성된 조선어사전편찬회(朝鮮漁辭典編纂會)에 참가했으며, 1934년 4월에 중등 조선말본을 간행하였다. 흥업구락부운동으로 실직된 기간에 한글 연구에 더욱 집중하여 1941년 그의 대표작 한글갈을 완성해서 간행하였다. 1942년 10월에 일제가 민족탄압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운동으로 구속되어 1945년 1월 16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15 대한 광복 이후 한국학회 이사장, 문교부 편수국장을 역임하면서 한글 연구와 한글 전용운동에 전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