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운(田明雲)은 1908년 3월 20일 대한제국 정부 외국인 고문인 친일파 미국인 D. W.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기자들과 만나 친일발언을 하자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는 공동회를 개최하여 4인의 총대(總代)를 뽑아 스티븐스에게 항의했으나 스티븐스가 거절하자 그를 구타했다. 전명운은 스티븐스를 저격하기로 마음먹고, 1908년 3월 23일 오전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려고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페리 정거장에 도착한 스티븐스가 일본 총영사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앞으로 다가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되었다. 스티븐스가 전명운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뒤에 있던 장인환(張仁煥)이 3발을 쏘았다. 1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맞았으나 2발은 스티븐스의 허파와 허리에 명중시켰다. 총을 맞은 전명운은 병원에 실려갔고, 장인환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스티븐스는 3월 25일 죽고, 전명운은 퇴원한 뒤 구속되었다. 미주 내 한인사회는 스티븐스 저격 의거를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을 규탄하고 나아가 국권회복운동의 전기로 삼았으며,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와 공립협회(共立協會)는 재판비용을 모금해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투쟁을 했으며 재판 결과 무죄로 풀려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