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환(朴昇煥)은 대한제국 육군 참령을 지냈으며,명성황후 살해사건, 을사늑약, 고조 광무제 강제 퇴위 등 일제의 만행에 대해 보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일본은 1907년 7월 정미늑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일제 통감부를 통해 장악하면서 이후 강제 병합의 최대 장애가 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킬 것을 순종 융희제에게 강요했다.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 해산의 칙령이 내려졌으며, 8월 1일에는 군대 해산식이 강행되고 무기가 압수되었다. 이때 시위보병(侍衛步兵) 1연대 1대대장으로 있던 박승환은 병을 핑계로 해산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군대해산의 명을 듣고 분개하여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애석함이 없다"(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惜)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후 자결했다. 박승환의 자결이 알려지자 부대 장병들은 무기를 꺼내 들고 일본군과 육박전을 벌여 일본군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 전투가 끝난 후에도 약 1개월에 걸친 지방 진위대(鎭衛隊)의 해산과정에서 원주 진위대와 강화 분견대(分遣隊) 등이 집단적으로 항쟁을 벌여 많은 군인이 정미독립운동으로 전환하여 무력(武力)이 강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