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락(金河洛)은 1895년 11월 단발령이 내리자 경기도 이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민승천(閔承天) 휘하의 도지휘(都指揮)가 되어 광주(廣州)·이천·안성·연천 등지에서 을미독립운동을 했다. 11월 17일 광주 노루목전투에서 일본군 100여 명을 죽이고 무기와 군량을 다수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광주·이천을 중심으로 의병들을 전투훈련시키는 한편, 격문을 각지에 발송하여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1896년 2월 이현(梨縣)에서 적군과 교전했으나 패했다. 군사를 재수습하고 영남지방으로 내려가 총병력 3기 9대를 인솔하는 의병장이 되었다. 5월 의흥군(義興郡)을 점령했고, 청송(靑松)과 비봉산(飛鳳山) 전투에서 토벌군을 격퇴했다. 6월에는 광주 인자점(仁疵店)에서 군비를 재정비하여 광주성을 공격·점령했다. 7월 청하(淸河)·청송의 의병과 영덕 의병장 신돌석(申乭石), 안동 의병장 류시연(柳時淵)과 함께 적과 싸우다 양쪽 어깨에 총탄을 맞고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