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년(李康秊)은 1895년 8월 미우라 일본공사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친일적인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巡檢)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을 체포해 농암(籠巖) 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梟首)하였다. 제천으로 류인석을 찾아가 유격장이 되고 군사 1백여명을 이끌고 충주 수안보에 있는 적의 병참을 공격하였다. 이어 문경으로 진군하여 조령삼관문(鳥嶺三關門)을 차단하여 쳐들어오는 적을 물리치고 총기 탄환 60여 상자를 빼앗았다. 그 후 다시 제천으로 진군하여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패하자 단양으로 후퇴하였다. 소백산으로 들어가 의병을 해산하고 단양 금채동에 은신하였으며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당하자 영춘(永春)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7월 제천으로 진군하여 원주 진위대(鎭衛隊)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閔肯鎬) 의진(義陣) 등과 연합하여 500여명의 적을 토멸하고 9월에는 싸릿재, 죽령(竹嶺), 고리평(故里平), 백자동(柏子洞) 등지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이 해 12월 13도 연합 의진(義陣)을 편성하자,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참석하였다가 미수에 그치자, 이듬해 봄부터 용소동전투(龍沼洞戰鬪), 갈기동전투(葛其洞戰鬪), 백담사전투(百潭寺戰鬪), 안동서벽전투(安東西壁戰鬪)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