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權晙)은 1917년 광복회(光復會)조직에 참여하여 격렬한 대한광복운동을 전개하다가 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했다. 1921년 북경(北京)에서 김원봉(金元鳳)과 같이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고, 군자금 조달과 폭탄 제조 등의 임무를 맡아 종로경찰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의 폭탄 투척과 동경 이중교(二重橋) 투척 등을 적극 지원했다. 1926년에 쑨원이 세운 중국국민당 육군군관학교인 황포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북벌전(北伐戰)에 참전하여 활약하기도 했다. 1926년 한구(漢口)에서 개최된 한국, 중국, 인도, 몽고, 안남(安南), 대만인 등으로 조직된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집행위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32년 남경(南京)에서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아 한국인군사학교를 설립하고 그 교관으로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입당하여 활약했다.1934년 중국군 연장(連長)으로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하면서 항일전에 참전했다. 1944년 중경(重慶)에서 임시정부에 들어와 내무부 차장에 임명돼 활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