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정수장학회가 왜 정쟁이 되는가,

2012.10.18 10:46:10

사실은 사실대로 알 필요가 있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일간 정수장학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겠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는 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사임했으니 사실상으로나 법적으로나 정수장학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안철수가 한때 국민은행 사외이사에 있었으나 물러난 지가 제법 오래 되었으니 국민은행 이사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치와도 다르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야당이 끈질기게 정수장학회를 공격하는 이유는 정수장학회가 탄생된 배경의 핵심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 그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올해 대선이 없고, 박근혜가 대선 후보가 아니었다면 야당은 정수장학회를 다시 끄집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정수장학회는 법적 지위 상, 박근혜와 무관하다는 것을 야당 자신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당은 박근혜로 부터  별다른 개인적 공격소재를 찾지 못하자 흘러간 물레방아를 돌려서라도 공격을 해야 하는 정략이 필요했기 때문에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지태 후손들이 정수장학회 재산 중 김지태 지분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후손들이 찾아가야할 금액은 얼마나 될까? 정수장학회 재단의 재산 총액은 주식 액면가 기준으로 28억5천여 만 원 상당 된다. 이중에서 김지태 가족이 찾겠다고 해봤자 주식 액면가로 치면 4억5천5백여 만 원 정도 뿐이다., 이 금액은 재단 전체 재산의 15.96%에 해당된다.  이 중에서 김지태의 지분을 살펴보면  mbc 주식 재단 보유 주식 6만주중의 30%인 1.800주(액면가 5천원), 부산일보 보유 주식의 100%인 20만주(액면가 만원), 그리고 부산 mbc 보유 주식 110,920주중, 27%인 6만 8천주(액면가 5천원) 등이 전부인 셈이다.


김지태는 1927년부터 1932년 까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근무했다. 동양척식회사는 일제강점기시절 조선의 농토를 수탈하기 위해 세운 민족수탈 회사다. 농민들에게 고리사채를 대여해 주고 빚을 갚지 못하면 농민을 빚쟁이로 몰아 토지를 강제 수용해 가는 악명 높은 괴물 같은 회사였다.  회사를 퇴직한 일 년 뒤, 김지태는 울산 지역의 논 2만평을 10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불하받고 소작을 시켜 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한다.


당시 유력한 일본인조차 만평 이상을 불하받지 못할 정도였으니 김지태가 동양척식회사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반대로 풀이하면  김지태가 동양척식회사의 모범 근로자였다면 조선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저승차사와도 같았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지는 대목이다.


부가 축적되자 김지태는 1934년, 군복의 원료를 생산하는 부산직물공장을 경영하게 되고 1935년에는 군수품 포장지를 생산하는 조선지기회사를 설립하며,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무기의 재료가 되는 조선주철 공업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이렇게해서 김지태는 부산 경남에서 가장 많은 호별세를 내는 주인공이 되어 서울에는 이병철, 부산에는 김지태라는 말이 세상에 회자 되기도 했다고 한다.  김지태가 일제강점시대 때, 왜 다양한 사업을 했고 어떻게 해서 그토록 큰돈을 벌게 되었는지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 과정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김지태는 해방 후, 1948년에는 부산일보사를 인수했고, 1951년에는 조선견직회사를 불하 받았으며, 1957년에는 부산 mbc를 인수했고, 1958년에는 한국문화방송을 창설하여 언론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의 여파는 4.19를 낳게 만들었지만 극심한 정쟁불안과 사회 혼란, 그리고 좌우이념의 대립으로 5.16이 일어나자 부정축재처리법을 통해 김지태는 밀수와 관세법위반, 국내자산 해외도피, 허위공문서 작성과 농지개혁법 위반으로 7년 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이때 사회 환원과 재산반환 각서를 쓰고 기업 활동을 위해 풀려나기도 했다. 김지태는 “나의이력서” 라는 책에서 그 당시의 재산 환원은 만족스러운 일이며 환영해야하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


정수장학회라는 이름은 1982년 전두환 정권이 5.16 장학회를 개명하면서 탄생한 이름이다. 5.16 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하기도 했다. 김지태는 부산시 대연동 소재 토지 12만평을 토지 브로커를 통해 매입한 토지도 내 놓기도 했지만, 김지태 등 다른 기부자들이 내놓은 재산과 함께 기부된 재산의  일부는 경제초석을 다지기 휘한  산업화 자금으로도 사용되었으므로 정수장학회에 남아있는 김지태 소유의 재산은 위에서 밝힌 내용이 전부인 셈이다. 


일부에서는 정수장학회가 부일장학회를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정수장학회가 김지태의 재산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아는데 이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재산의 형성은 김지태 재산 일부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부한 재산,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이 기부한 재산, 화신 박흥식 전 회장이 내 놓은 재산, 스코필드 박사 등 외국인이 기부한 재산, 그리고 국내 독지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 동포들이 기부한 재산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정수장학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개개인의 자유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또다른 사실은 또다른 사실대로 존재하게 마련인 법이다.

석우영 논설위원 기자 stone620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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