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람의 얼굴을 한 외교는 기술이 아닌 태도다

  • 등록 2025.07.28 16: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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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미래는 실리도 감정도 아닌, 기억과 연대 위에 세워진다



[ 김덕엽 칼럼니스트 ] “당신은 누구를 대신하여 말하고 있는가?” 해당 질문은 기자, 외교관, 정치인 모두에게 던져야 할 근본적 물음이다.

한·일관계처럼 기억과 책임, 감정과 실리가 교차하는 외교의 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우리는 이 시간을 자축할 만큼 안정된 관계를 누리고 있는가, 대통령 파면, 내각 교체, 외교 침묵. 국내외 정치 격랑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기억'이었다.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외교가 주저할 때, 시민이 움직였고, 정치가 분열될 때도 국회는 대화의 통로를 남겼다. 그리고 현장의 기록과 상징은 한탄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하는 자산이 되었다. 그동안 외교는 종종 '기술'의 문제로 다뤄졌다. 말의 정교함과 타이밍의 절묘함, 문구의 전략성. 그러나 그것으로 외교가 성립한 적은 없다.

특히 한·일관계는 외교 기술로는 봉합될 수 없었다. 사죄는 반복됐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국민 감정은 해소되지 않았다. 진정한 외교란 신뢰다. 신뢰는 문장으로 쌓이지 않는다. 그것은 태도에서 시작된다. '기억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로서 말이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는 위안부, 강제동원, 유해 미수습 등 역사적 쟁점을 외면하지 않았다. 때로는 유엔과 국제사회로 외교를 확장시켰고, 때로는 추모 현장에 머물렀다. 올해 일본 장생탄광에서 한국과 일본의 잠수사들이 함께 바닷속 유해를 조사한 일은 기억과 존엄, 책임의 외교가 실현되는 상징이었다.

한편 국회는 정부가 외교를 회피할 때, 초당적 의원외교를 통해 비공식 채널을 유지했고, 시민의 외교적 윤리를 정치적 지속성으로 이어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한 외교가 아니다. 다층적인 외교, 사람의 얼굴을 한 외교다. 정치는 관계의 제도화를, 시민은 기억의 윤리화를, 언론은 기록의 공공화를, 그리고 정부는 구조의 책임화를 담당해야 한다. 한일 간 외교는 협상의 완성보다 관계의 설계, 신뢰의 복원, 태도의 선언에서 출발해야 한다.

외교는 국기와 국장이 아닌,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다. 피해와 가해, 책임과 용서를 넘어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올해부터 외교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억은 태도로, 존엄은 제도로, 책임은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외교를 시작할 수 있다.
김덕엽 기자 editorkim12350@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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