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鄭道傳)은 1388년 음력 6월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토지개혁을 단행하였으며 밀직부사에 올라 조준과 함께 조세 제도와 토지 제도를 바로잡아 새 정권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자금 확보와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전제(田制) 개혁에 착수하여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1392년 4월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하였고 정도전은 7월 17일 공양왕의 선양을 이끌어 내어 이성계를 임금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 조선을 건국하였다. 정도전은 어명을 받아 새 왕조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17조의 편민사목을 지어 발표하였다. 조선 건국 1등 공신 정도전은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겸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등의 군국의 요직을 겸함으로써 조선의 핵심 실세가 되어 행정, 군사, 외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조선이 갖춰야 할 정부 형태와 조세 제도는 물론 법률과 제도의 바탕을 만들었으며,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확립시켰다. 정도전은 천도를 결정하고 도읍 이전을 단행하였는데 경복궁과 태묘의 위치 및 도성(都城)의 기지를 정하고, 각 궁전 및 궁문의 칭호, 도성의 8대문 및 성안 48방(坊)의 이름을 제정하였다. 노비 해방에도 노력하였으며, 병제(兵制)를 대폭 개혁하여 진법(陳法)·진도(陳圖)를 지어 장병을 훈련하고, 1397년 동북면 도선무순찰사(東北面都宣撫巡察使)가 되어 함경북도 경원(慶源) 지방에 가서 성보(城堡)를 수치(修治)하고 주·군과 역참을 획정하였다.국가의 통치규범인 조선경국전, 역대 제왕들의 치적을 담은 경제문감(經濟文鑑),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의 편찬을 주도하여 새로운 치국의 대요와 관제 등 모든 제도와 문물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국방력 강화와 고구려 고토 수복을 위한 공병제도를 도입하고 군의 통수권을 국가에 귀속시키기 위한 사병을 혁파하였다. 조세 수급의 안정을 통하여 국가 재정의 건전성 확보하기 위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에 입각한 과전법을 단행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