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순(朴齊純)은 1885년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급제, 중국 톈진에 종사관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 이조 참의와 참판, 한성부윤 등을 역임했다. 1898년 외부대신이 되고, 1905년 전권대신으로 을사늑약에 조인하였다. 같은 해, 한규설의 뒤를 이어 수상 격인 참정대신(叅政大臣)이 되었다.1909년에는 이완용 내각의 내부대신이 되었다. 내부대신으로서 1910년 8월 경술늑약(庚戌勒約)에 서명한 뒤, 일본 정부로부터 훈1등 자작(子爵) 작위를 받고 총독부 중추원 고문(中樞院 顧問)에 임명되었다. 10만 원의 은사공채(恩賜公債)를 받았으며, 정4위에 서위되었다.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勒結) 후에도 경학원(經學院)의 대제학에 임명되어 계속해서 친일 활동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