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周時經)은 배재학당 시절 독립신문사에서 서재필의 언문조필로 있으면서 철자법을 통일할 목적으로 1896년 국문동식회를 신문사 안에 설립했다. 1907년 지석영이 만든 국어연구회의 회원으로 4개월간 활동했으며, 같은 해 7월 학부 내의 국문연구소 주임위원으로 임명되어 3년 동안 국문연구안을 작성·제출·토의했다. 상동청년학원 안에 개설된 하기(夏期)국어강습소의 졸업생과 유지들을 규합하여 1908년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한 후 2년 동안 이끌었다.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조선언문회(배달말글몯음)로, 강습소는 조선어강습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13년 학회의 이름이 한글모로, 1914년 조선어강습원의 이름이 한글배곧으로 다시 바뀌었다. 주시경은 1909년에는 J.S.게일, 다카하시 등과 더불어 한어연구회를 조직하기도 했다.이화학당·흥화학교·기호학교·융희학교·중앙학교·휘문의숙·배재학당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상동교회 내의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과 여러 강습소를 중심으로 국어(國語) 강의를 전개했다. 1900년 상동사립학숙(尙洞私立學塾)에 국어문법과를 부설하고 1907년 여름에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의 국어강습소, 같은 해 11월 같은 학원에 설치된 국어야학과, 1908~09년 국어강습소, 1910년 재령 나무리강습소 등의 많은 강습소를 통해 음학(音學)·자분학(字分學)·격분학(格分學)·도해학(圖解學)·변체학(變體學)·실용연습 등을 가르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