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후 국가최고회의기관인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권한이 너무 강대하므로 태조는 도평의사사의 병권(兵權)을 분리하여 삼군부를 설치하고 태조가 가장 신임하는 정도전(鄭道傳)을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에 임명하여 병권을 맡기고 한양 천도 후 경복궁을 창건하고 광화문 앞 동쪽 첫머리에 문직 최고기관인 도평의사사를 짓고, 서쪽 첫머리에 삼군부를 지었다. 태종 대에 도평의사사를 의정부(議政府)로 개칭하고 삼군부를 폐지하자, 도평의사사 건물을 의정부가 그대로 사용하고, 삼군부의 건물을 예조가 사용하였다. 흥선헌의대원왕(興宣獻懿大院王)은 1864년 2월 비변사(備邊司)의 권한을 줄이기 위하여 비변사를 의정부(議政府)와 비변사로 나누어 비변사는 국방과 치안만 관장하게 하였고 1865년 3월 비변사(備邊司)를 폐지하고 이것을 의정부(議政府)에 합하였다가 1865년 5월 다시 군(軍) · 정(政)을 분리하여 삼군부(三軍府)를 설치하였다. 삼군부(三軍府)를 복설(復設)하자 국초(國初)와 같이 예조 청사를 삼군부 청사로 삼고, 예조는 광화문 앞 동쪽 이조와 호조 중간에 있던 한성부(漢城府)로 옮기고 한성부는 훈국신영(訓局新營)으로 옮겼다. 삼군부의 직제는 영삼군부사(領三軍府
조선시대 한성(漢城) 5부(五部) 내의 포도(捕盜),순라(巡邏) 등 치안(治安) 업무에 중심 역할을 하였던 기관은 좌포도청(左捕盜廳) · 우포도청(右捕盜廳)이었다.우포도청(右捕盜廳)은 혜정교(惠政橋)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좌포도청(左捕盜廳)은 파자교(把子橋)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한성(漢城) 5부(五部)의 치안 업무를 담당하였다. 1894년 7월 14일 설치한 경무청(警務廳)의 책임자 경무사(警務使)는 내무대신의 지시를 받아서 한성(漢城) 5부(五部) 내의 경찰 업무와 감금 업무(監禁 業務)를 수행하되 범죄의 경중을 구분하여 법사(法司)로 이송(移送)하는 모든 일을 관장하였고 한성 5부(五部)에 경찰지서(警察支署)를 두었으나 1895년 경무지서를 경무서(警務署)로 하였다. 경무서의 서장은 경찰 사무를 관장하여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관할구역 내를 순시하며 민정 시찰과 부하의 사무 집행을 감독하고 부하직원에게 상부 명령과 경무 법규를 주지시키고 주무관(主務官) · 군(郡) · 읍(邑) · 동장(洞長) 및 기타 관계 관청과 문서 왕복을 할 수 있으며 서장이 유고시에는 수석 총순(首席 總巡)이 서장을 대리하였다. 총순(總巡)은 순검의 행의(行儀)와 복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