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가슴 아픈 일이다. 친박의원으로서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직에 입각할 때부터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렸었다. 그동안 이 정권은 입으로만 친서민정책이었지 부자감세 등으로 민심이반이 심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4대강 사업에 올인하는 이상한 정권에 친박 의원의 한 사람이 장관직 수락에 이용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때는 한미FTA를 어떻게 풀 것인가와 그에 대한 역풍을 걱정했으나 의외로 구제역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책 선택의 문제다. 군에서도 전쟁 시 다양한 전략전술 상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을 문책하지 않아도 부정부패하거나 재물을 사적으로 빼돌리는 지휘관을 엄하게 다스린다 했다. 아니 거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 군율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많은 사람들이 환경파괴라 하여 대규모 토목, 건설정책에 치우친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운하게도 전국적으로(제주도 호남 등 제외) 구제역에 조류독감에 불행한 사태가 번지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유장관은 책임지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참으로 농림수산식품부를 아우르는 수장으로서 신성한 결정이요,
청와대가 정병국, 최중경 인사를 밀어붙일 태세다.문화체육관광부와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도 중요하지만 이미 끝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함에 있어서도 여야 이견으로 국회에서는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그도 그럴 것이 그 무거운 직책에 걸 맞는 인사를 장관으로 기용해야 논란이 없을 터인데, 내정 이후 그들의 자질과 도덕성에 대하여 큰 문제가 계속 불거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사를 강행하면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도 논란은 진행될 것 같다. 어떤 내정자는 야당으로부터 까도남이라는 별칭까지 얻어놓은 상태다.인사가 만사라 했는데, 왜 이러한 사태가 연속 벌어지는 것일까?아무리 유유상종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하더라도 이번 인사는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특히 아무리 그들이 민심 외면하고 임명권자에 의해 억지로 장관이 된다한들 땅 투기, 세금체납, 국민세금 횡령의 악덕과 탐관오리적인 행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뉴스에 전하는 ‘고아 3남매 보상 토지 헐값 매입 의혹’이라거나 ‘강남 신흥재벌’ 이라는 평가는 영원히 백성들 귀를 귀찮을 정도로 울릴 것이다.정상적인 사회라면 탐관오리는 내쳐야할 대상일 뿐인데, 어찌 정2품의 청백리들이 차지할 고귀한 직책을 그들에게 가져다준
자주국방은 어디가고 정신 나간 외세의존증이 또 도지는가?호호통재라!이 정권은 왜 그리 작아졌는가? 국민의 전폭적 신뢰로 우리나라는 스스로 지킨다는 자주국방의식은 없고 국방조차 외세에 의존하려는 소아병적 불신권력의 한계가 이번에 또 대형 사고를 치려하고 있다.지금 무엇이 아쉬워 한일군사협정이니, 군사협력이라는 허망한 소리가 들리는가?우리의 국방은 기존의 한미군사협정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본은 한반도 전쟁 시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직접 군사를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방어를 위해 한일해협 너머에서 열심히 한미군을 도울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그런데 일본군을 한반도에까지 아예 끌어들이자고? 참으로 딱한 정권이다. 아니, 일본으로써는 불감청이언정고소원이라고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어찌 이리 어리석은 짓을 우리정권이 나서서 연출하고 있는가? 역시 국민을 못 믿고 신뢰를 잃은 정권만이 할 수 있는 외세의존증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일이다.한일군사협력은 지금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은 아직도 을사늑약에 이은 조선 강제합병에 대한 사과나 이후 벌어진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고 있다. 둘째, 일본은 우리
지난 2007년 여름 뜨겁던 한나라당 경선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 mb 후보는 도곡동 땅 문제와 이후 bbk 의혹 등으로 도덕성에 심각한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럴 때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흑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정동기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출신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제4부로서 정치적으로 독립된 국가기관이다. 이러한 기관의 장에 친 이명박계 인물을 앉힌다함은 인사의 기본을 망각한 처사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이라 하여 그 고마움을 좋은 자리로써 보답하겠다는 뜻으로 국민은 이번 인사를 오해하기 쉽다. 어찌 국가의 세입·세출을 결산하고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헌법에 의해 설치된 정부기관의 장 자리에 개인적으로 가까운 인물을 임명하려하는가? 이는 권력남용이요,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그렇잖아도 지난 경선 및 대선 시 의혹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에서는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감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장본인을 회전문 돌리듯 보은성 인사를 한다함은 오기요, 지나친 국민 무시라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 한성(漢城) 5부(五部) 내의 포도(捕盜),순라(巡邏) 등 치안(治安) 업무에 중심 역할을 하였던 기관은 좌포도청(左捕盜廳) · 우포도청(右捕盜廳)이었다.우포도청(右捕盜廳)은 혜정교(惠政橋)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좌포도청(左捕盜廳)은 파자교(把子橋)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한성(漢城) 5부(五部)의 치안 업무를 담당하였다. 1894년 7월 14일 설치한 경무청(警務廳)의 책임자 경무사(警務使)는 내무대신의 지시를 받아서 한성(漢城) 5부(五部) 내의 경찰 업무와 감금 업무(監禁 業務)를 수행하되 범죄의 경중을 구분하여 법사(法司)로 이송(移送)하는 모든 일을 관장하였고 한성 5부(五部)에 경찰지서(警察支署)를 두었으나 1895년 경무지서를 경무서(警務署)로 하였다. 경무서의 서장은 경찰 사무를 관장하여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관할구역 내를 순시하며 민정 시찰과 부하의 사무 집행을 감독하고 부하직원에게 상부 명령과 경무 법규를 주지시키고 주무관(主務官) · 군(郡) · 읍(邑) · 동장(洞長) 및 기타 관계 관청과 문서 왕복을 할 수 있으며 서장이 유고시에는 수석 총순(首席 總巡)이 서장을 대리하였다. 총순(總巡)은 순검의 행의(行儀)와 복장을
신뢰와 화합을 바탕으로 한 박근혜표 복지평화 정책이 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한국에 맞는 복지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 박 전 대표는 유세장을 방불케 하는 많은 참석자들 앞에서 인사말을 통해 “바람직한 복지는 소외계층에게 단순히 돈을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꿈을 이루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임을 주장했다. 아울러 “그것이 바로 개인의 행복이고 국가의 발전이자 최선의 복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식 복지는 일시적인 인기몰이 식 포퓰리즘이 절대 아니다. 그가 밝힌 복지는 항구적이며 행복한 복지를 말한다. 즉, 박 전대표가 제안하는 한국형 복지제도의 핵심은 “선제적·예방적이며 지속가능하고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통합복지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한 국가의 정치는 가식과 거짓 없이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어야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 간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 신뢰를 바탕으로 한 화합 위에 진정한 복지정책이 이루어질 때 그러한 나라는 부강하며 평화가 찾아온다. 군대도 안 갔다 온 면제자들이 주름잡는 거짓, 불신, 일부지역 편중 예산이나 인
1884년(고조 21) 역참제(驛站制)에서 탈피하여 근대적 통신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최초의 우편행정을 관장한 우정국(郵政局)을 설치하는데 1882년(고조 19) 12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내에 우정사(郵政司)가 설치됨으로써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시작되고 초대 협판(協辦)에는 홍영식(洪英植)이 임명됐다. 1883년 홍영식이 보빙부사(報聘副使)로 미국을 시찰하고 미국의 우편제도를 고조 광무제에게 건의하여 1884년 3월 군국사무아문(軍國事務衙門) 안에 우정총국이 설치되었다.전의감(典醫監) 터에 우정총국 청사를 두고, 우정총관 홍영식(洪英植)이 법령을 준비하는 등 개국 준비를 하여 1884년 10월 1일부터 우편업무를 시작했다. 1887년 3월 6일 저녁 건청궁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점화되었는데 향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석탄을 연료로 발전기를 돌렸고 16촉 광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발전기 설치·전등 가설은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윌리엄 멕케이가 맡았다. 1897년, 한성에 전화기가 설치되고 당시 전화는 덕률풍 또는 득률풍, 전어기 등으로 불렸으며 1902년 한성과 인천이 전화로 연결됐다. 1898년 1월,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고
대한제국(大韓帝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부국 강병한 근대 국가의 건설을 위해 1893년, 국내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통제영학당(統制營學堂)을 강화도(江華島)에 설립하였으며 영국 해군 대위 코렐과 하사관 허치슨이 강화도에 들어와 해군생도들의 근대적 군사훈련을 맡았다.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우리나라 신식 군대가 편제,계급,군복이 제대로 갖추어졌다. 1894년 10월 4일 칙령 제10호가 반포되면서 장교와 하사관, 병졸로 크게 나누고 장교는 대위 부위 참위의 위관급과 정령 부령 참령의 영관급,그리고 대장(大將) 부장(副將) 참장(參將)의 장관급으로 다시 구분하고 하사관은 참교 부교 정교의 3등급, 병졸은 이등병 일등병 상등병의 3등급으로 나누었으며 그외에 무관생도가 있었다.대장(大將)은 총리대신(總理大臣)급과 같고, 부장(副將)은 대신(大臣)급, 참장(參將)은 차관(次官)급이었다.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는 1899년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원수와 대원수의 계급을 두었으며 원수는 황태자(皇太子), 대원수는 황제(皇帝)였다.원수부는 대한제국의 최고 군령기관이며 대원수인 고조 광무제가 군사적 실권을 갖고 자주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으며 대한제국의 황
조선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제후국(諸侯國)의 의례서이고 대한예전(大韓禮典)은 1897년 대한제국(Daehan Empire) 건국(建國)과 동시에 시행하기 위하여 사례소(史禮所)에서 편찬한 전례집(典例集)이며 황제즉위의(皇帝卽位儀) 등 독립국가에 필요한 전례를 새롭게 만들었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비해 규모가 크고 의장(儀仗)을 화려하게 표시하였다. 황제국(皇帝國)의 국격에 맞는 국가 의례를 정비하여 편찬한 의례서가 바로 대한예전(大韓禮典)으로 1897년 고조(高祖)가 대한제국(Daehan Empire)을 건국하고 대한제국(大韓帝國) 1대 광무제에 등극(登極)하며 대한제국 황실(皇室)의 국가의례를 황제의(皇帝儀)로 격상하여 거행하였다. 대례의궤(大禮儀軌)는 1897년 9월 칭제(稱帝)운동이 시작되어 10월 11일 대한제국(大韓帝國) 제천단(祭天壇) 환구단(圜丘壇)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10월 12일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대한제국 황제(皇帝)에 등극(登極)하고 왕후와 왕태자가 황후(皇后)와 황태자(皇太子)로 책봉(冊封)되고 10월 13일 대한제국이 건국(建國)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대한제국 건국 과정은 고조 광무
운현궁(雲峴宮)은 대한제국 1대 고조 광무제의 생부인 흥선헌의대원왕(興宣獻懿大院王)의 저택으로 고조 광무제가 탄생하여 조선 국왕으로 즉위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이다. 고조 광무제가 즉위하자 운현궁은 흥선헌의대원왕이 10여년간 섭정(攝政)하며 정치를 하는 곳으로 변모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흥선헌의대원왕(興宣獻懿大院王)이 섭정(攝政)을 행하던 1863년 ~ 1873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노락당(老樂堂)과 노안당(老安堂)은 1864년 9월, 이로당(二老堂)은 1870년 준공되었다. 운현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이 되는 노락당(老樂堂)은 초익공(初翼工) 7량(七樑) 건물로 사대부가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기법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아름다운 창살 문양이 남아있다. 정면 3칸은 앞퇴를 개방했고, 좌협간 2칸 중에서 한 칸 부분이 개방되어 좌측 날개 부분의 통로 역할을 한다. 좌우 각 2칸은 온돌, 중앙 3칸은 대청이다. 좌우측의 날개 부분 즉 안채의 몸채에서 직각으로 꺾여 있는 부분은 돌출부가 각 2칸이며 부엌과 창고로 쓰였다. 고조 3년 고조 광무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가례가 있었던 곳이다. 흥선헌의대원왕이 국정을 의논하던 노안당은 전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