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덕엽 칼럼니스트 ] 한국 정치에서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특히 장애인 비하나 소수자에 대한 모욕이 정치적 공간에서 공공연하게 노출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이 장애인 비례대표 제도와 장애 의원의 존재 자체를 폄하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사건은, 그동안 누적돼 있던 문제들이 표면 위로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발언 그 자체보다, 그 발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정당의 태도였다.
대변인은 정당의 입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은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조직의 인식과 기준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실언이나 개인적 과한 표현 정도로 축소하며, “엄중 경고”라는 상징적 문구만을 남겼다.
공식 사과도 없었고, 징계 논의도 없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이나 시스템 마련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대응이 미흡했다는 수준을 넘어, 정당이 사회적 약자 문제를 얼마나 가볍게 취급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정치가 발전하려면, 그 정치의 언어도 발전해야 한다. 차별을 용인하는 언어는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화의 문제이며,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장애인에 대한 비하 발언은 정치적 경쟁 과정에서의 공격적 표현이 아니라 국가가 보호해야 할 시민의 권리와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정당이 이러한 문제를 신속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면, 그 정당은 정치적 책임의식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 보수정치가 오랜 시간 동안 안고 있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낸다. 실제 약자 인권 문제를 ‘정치적 부담’으로만 인식하는 태도이다. 조직 내부에서 약자를 향한 비하가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그 정당의 철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험대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정당은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는 구조를 반복해 왔다. 대중의 비판이 닥치면 개인의 실수로 문제를 축소하고, 조직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책임을 희석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조직적인 학습이나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고,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또다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특히 정당 내부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에 관한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다는 점도 한 몫한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장애인·여성·이주민·청년 등 다양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이 이들 시민의 현실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당은 시대 변화와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특히 보수정당이 선진국형 민주주의 국가로서 역할을 하려면,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기준부터 엄격하게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는 숫자가 아니라 태도에서 완성된다. 경제성장률이나 선거참여율이 아무리 높아도, 소수자에 대한 비하가 용인되는 정치문화가 계속된다면, 그 민주주의는 결코 성숙했다고 할 수 없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는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호한 조치를 취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의 대응은 여전히 뒤처져 있으며,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의힘이 취해야 할 조치는 사실 어렵지 않다. 정당 내부의 공식적 사과, 대변인에 대한 징계 검토 착수, 장애 인권 감수성 교육 의무화, 재발 방지 시스템 구축 등이다. 이는 한국 정치가 국제적 기준에서도 기본적으로 요구받는 최소한의 조치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그러한 조치는 보이지 않았다. 정당이 스스로의 잘못을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이는 결국 정치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실언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는 한국 정치가 앞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운영될 것인지, 정당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 정치가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약자를 향한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며, 정당은 그러한 문화를 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권이 국민에게 신뢰받기 어렵고, 민주주의는 점점 더 취약해질 것이다.
정당은 정치적 이익의 집단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공적 기관이다. 그 공적 기관이 약자를 향한 모욕을 축소하거나 방치한다면, 그것은 정치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번 사건은 정당이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어떤 태도로 국민 앞에 설 것인지 묻는 중요한 계기다. 국민의힘이 정말로 ‘국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우선 국민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책임부터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단순한 권력 집착일 뿐이다.
한국 보수정치는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는가? 차별과 혐오를 용인하지 않는가? 그리고 정당은 그 기준을 스스로에게 적용할 의지가 있는가? 이 질문에 진정성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권력이 아니라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의 첫걸음은, 무엇보다 약자를 향한 모욕과 차별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