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이 많았던 탓일까. 답답한 속마음이 그의 표정에 묻어났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던 그의 밝은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박선규 후보는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였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제 진심을 알리고 싶은데 많이 분들이 오해부터 하신다”며 기자의 손을 잡고 하소연을 쏟아내기도 했다. 기자의 작은 질문 하나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선거 캠프는 꽤 붐비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과 캠프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니 마냥 민심이 나쁘지만은 않은 듯 했다. 캠프 관계자는 “다른 후보들보다 뒤늦게 선거사무실을 차린 만큼 더욱 바쁘게 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진심을 전하고 싶다며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부탁했다. 그리고 주민들과 손을 맞잡고 귀를 기울였다. 그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10분여가 흐르고 박선규 후보가 미안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기다려줘서 정말 고맙다”며 차를 건넸다.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됐다. <뉴데일리>가 서울 영등포구(갑)에 출사표를 던진 새누리당 박선규 후보를 만나봤다. - 이번 총선에 출마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지금 대한민국은 분명한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국가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원칙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현재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모두 ‘좌클릭’을 해서 정책적 차이는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제대로 된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한 것은 당이 국민과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탈피해 더욱 철저히 인물로써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유능한 젊은이들이 당당하고 공개적으로 ‘나도 한번 정치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지금 젊은이들은 정치를 꿈꾸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의 주변에 ‘돈은 벌었으니 명예도 얻어 보겠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말 괜찮은 젊은이들이 정치를 꿈꿔야 한다.” “젊은이들을 위해 우선 저는 깨끗하고 당당한 선거를 통해 선진 정치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선거철만 되면 난무하는 돈 선거, 비방 등 기존의 구태 정치 안 할 것이다. 더 큰 계획으로 자라나는 청소년, 대학생에게 정치를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아 꿈을 키우게 하고 싶다.” - 영등포구(갑) 지역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40여년 전 혼자 되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무작정 올라와 신길동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된 이후 어려운 살림에 우신초등학교에 다녔고 그렇게 정착하게 됐다. 잠시 떠나 있었던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영등포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영등포에서 가장 가난했던 아이가 영등포의 도움을 받고 자라서 KBS 기자, 청와대 대변인,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까지 지냈으니 영등포가 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지역 어르신들께서 절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쁘기 한이 없다.” “특별한 인연도 갖고 있다. 오래전 돌아가신 누나와 관련된 사연이다. 1987년 대학시절 한강성심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때 한 살 많은 누나가 큰 사고를 당해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응급실로 실려 왔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이었다. 누나가 제 바지를 붙잡고 ‘왜 의사들이 날 치료해 주지 않느냐’고 묻는데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의사에게 실패해도 되니까 제발 치료를 해달라고 온 가족이 부탁을 했다. 결국 병원의 동의를 얻어 피부 이식수술을 하게 됐다. 제 허벅지에 흉터가 남게 된 이유가 피부 이식수술이다. 정말 누나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십 년이 흘러서도 한강성심병원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누나에 대한 생각이 난다.” “솔직히 이번에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려다 잡혀왔다. 사람에게는 길이 있는 것 같다. ‘박선규, 도망가지 말고 널 키워준 지역에서 은혜를 갚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어릴 적 이곳에서 많은 아픔을 겪고 살아 봤으니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을 네가 한번 도와보라’는 계시로 여기고 있다.” 수술을 받은 누나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그래도 제가 기자가 되는 걸 보고 돌아가셨다. 누나가 입원한 날이 KBS 1차 기자 시험에서 합격한 날이다. 그리고 2차 논술 시험을 앞두고 피부이식 수술을 한 것이다. 정신이 있었겠나. 당연히 떨어졌겠다 싶었는데 KBS에서 이례적으로 2차 시험 결과를 따로 발표하지 않더라. 그래서 길이 있다 싶었다. 결국 2차와 3차 결과를 묶어 발표하는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제가 기자가 된 얼마 후 누나는 세상을 떠나셨다. 영등포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추억이 깃든 지역이다. ‘내가 양천이 아니라 왜 영등포에 다시 오게 됐을까’ 하는 답은 여기에 있었다.” - 영등포구(갑) 지역을 돌아보니 민심이 어떤가. “험하다. 굉장히 양극화가 돼 있다. 여당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들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하시고 야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들은 정체성의 문제와 국가의 미래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손가락질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금 출마한 민주통합당의 한 후보를 향해 많은 분들이 ‘원외에 있는 당협위원장이지만 당신도 같은 정치인 아니냐’라고 지적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물론 MB 정권 심판론도 피해갈 수 없다. 현 정부와 선을 긋는다고 해서 내 청와대 경력이 지워지지 않는 것 아닌가. 많은 분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성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 핵심 공약을 꼽는다면. “크게 교육과 복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영등포 지역은 30~40대 연령의 인구 유입도 매년 늘어나고 있고 전체 인구 연령대 중 차지하는 비율도 높다. 이들 가구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지원 방안 확대와 교육 환경 개선을 통해 전반적 교육의 질 향상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한 영등포구의 우수한 인재가 글로벌 시대에 맞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과밀학급 해소, 학교 주변 환경 정비, 노후 학습 시설 정비 등 구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요구에 상응하는 수준의 ‘아이 키우기 좋은 교육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하나씩 해결해 나가겠다.” “다음으로 복지에 관해 말씀드리면, 복지는 자립을 돕는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 승차를 시행한다고 해도 굳이 대기업 회장에게까지 일괄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재정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곳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권이 선거철만 되면 항상 복지 논쟁을 벌이지만 복지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쪽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저희 어머니는 서른 한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네 남매를 키우셨다. 당시 고구마 두 가마니를 들고 서울로 상경한 저희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독한 가난뿐이었다. 신풍시장 행상에서 남의 집 식모살이까지 하시며 네 남매와의 생활비를 버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가 어려운 이들의 속사정이 어떠한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소외계층에게 꼭 필요한 혜택을 주고 각각의 수요에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맞춤형 복지를 실천하겠다.” - 자신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과거 서울의 중심은 영등포였다. 이후 양천, 구로, 영동 등 분가시킨 자식들은 모두 잘 사는데 본가인 영등포는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우리 영등포가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나 막대한 예산을 따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저는 정부에서 일도 해봤고 국회가 돌아가는 구조도 정확히 알고 있다. 축구선수가 골을 넣는 방법을 알듯이 (정부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 지원을 끌어내는 노하우를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 경쟁력은 여기에 있다.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현장경험에 실무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그 이유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꿈을 이룬 책임자가 이젠 영등포의 미래를 책임지겠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거대자본이 점점 커지면서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나서야 하는데 (대기업들의) 그런 부분이 좀 아쉽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향후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 민주통합당 후보, 민주당 최고위원 출신인 국민생각 김경재 후보와의 3파전이 예상된다. “자신 있다. 다른 후보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리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 실력 있는 지역 대표를 원하는 주민들이 많기 때문에 좌우 이념을 떠나 정치력을 키우는 데 혼신을 다하겠다.” “특히 영등포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경력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기대를 갖고 계시다. 시간에 제약이 있는 만큼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없어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남은 시간 동안 가급적 많은 주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 트위터 소통에도 앞장 서겠다. 최근 팔로워도 많이 늘었다. 하루 수백명씩 늘고 있어 주민들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 인터넷 상에서 미국 연방 하원의원 입법보좌관 경험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일했다는 분이 계신다. 이는 제가 거기서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시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에드워드 로이스 하원의원과 일을 했을 때 저는 주로 탈북자 문제를 담당했다.” “사실 탈북자 문제는 1994년 3월 제가 기자로 활동할 당시 취재팀이 세계적으로 특종을 한 보도에서 시작됐다. ‘탈북자’라는 단어도 KBS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가 중국에서 탈북자를 만나 취재하면서 ‘만약 신분이 밝혀지면 목숨을 잃게 될 수 있으니 먼저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고 제안했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취재 내용을 사흘 연속 방송했다. 그 때 많은 탈북자들이 저에게 죽을 때까지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그래서 탈북자와의 인연이 시작됐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제 선거활동을 돕고 있는 것이다.” “2001년 11월부터 1년간 미국 연방 하원의원 의회 연수 프로그램(Concretion Followship)을 다녀왔다. 로이스 하원의원은 국제관계 위원회 소속이었으며 동아시아 태평양 소위의 위원이었다. 제가 한반도와 탈북자 문제를 보도하고 전쟁터 종군기자로 다닌 경험이 있어 로이스 의원이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2002년 6월 로이스 의원이 ‘탈북자들을 위한 결의안’이 처리될 예정이니 함께 본회의장으로 가자고 했다. 그때 ‘이 일을 위해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감동과 함께 만감이 교차했다. 제가 쓴 책에 이러한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시면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제가 일을 했다고 하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부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탈북자 관련 항의서한을 보낸 것도, 나중에 청문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것도,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에도 모두 제가 관련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08년 국내에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뿌리는 제 탈북자 관련 보도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최근 박선영 의원이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단식농성을 벌일 때도 발 벗고 달려가 응원을 했다. 기자 시절 탈북자 문제를 국제사회에 가장 먼저 제기했던 저로서는 이번 사태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말바꾸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번 100분 토론에서 방송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노무현 정신’의 부활을 다들 얘기하는데 이 정신은 유리함과 불리함을 떠나서 원칙에 따라 마땅히 가야할 길을 걷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원칙은 뒤로한 채 이익만 고집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파는 행위이다. 종로에서 당선됐지만 그래도 자신의 지역을 위해 떨어질지언정 부산에 출마하는 그 정신, 유리해도 불리해도 가는 것, 우리가 기억하는 노무현 정신은 ‘원칙’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무엇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강조하지 않았나. 한-미 FTA 체결,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그 정신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국의 문제를 가지고 말을 바꾸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다른 나라와 협약을 맺은 문제에 있어 말을 바꾸는 것은 도저히 국제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석해균 선장과 우리 선박이 소말리아 해상에서 납치됐을 때도 해군을 투입하지 않았나.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본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주장하면서 영토 분쟁을 유발하고 있는데 안보의 핵심시설이라고 하는 해군기지를 야당에서 반대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마지막으로 영등포(갑) 유권자들에게 한 말씀. “많은 지역 분들이 제가 새누리당의 전략 공천으로만 영등포에 오게 된 줄 아시지만 사실 앞서 잠시 말씀 드렸듯이 저희 어머니께서 네 남매를 데리고 처음 자리를 잡으신 곳이 이 곳 영등포이다. 초·중·고교 모두 여기에서 나왔고, 결혼해서 잠시 떠났던 것 외에는 계속해서 살아온 제2의 고향이다.” “신길동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꼬마가 자라 ‘2018 평창의 기적’을 이뤄낸 평창유치 정부 실무위원장으로 실행 능력을 검증받는 큰 영광과 무거운 책임의 자리까지 거쳤다. 또 저는 청와대 대변인으로서도 인연이 아닌 실력으로 일하면서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참모’로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박선규는 영등포가 키운 사람, 바로 영등포를 맡길 사람이다. 이제 40여년 전 가장 가난했던 시골 꼬마를 키워준 영등포와 이웃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통해 그 큰 은혜를 갚고자 한다. 지역구민들의 꿈과 소망을 하나하나 경청하고 함께 나누도록 하겠다. 정치를 바꿔 세상을 바꾸는 길에 함께 손잡아 주시길 바란다. 영등포를 새 희망의 땅으로 바꾸는 길에 함께 걸어가 주시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