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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過庭錄(아버지의 발자국)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아버지의 전기 "과정록"(過庭錄)이라는 것이 있다. 높은 벼슬은 아니었지만 利用厚生을 대표하는 實學主義者였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구구절절이 배어있는 회상록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이희평이라는 사람이 효우하고 신의있는 덕행과 함께 관직자로서의 모범을 보인 아버지의 행적을 기술하여 후손에 귀감을 삼고자 같은 이름의 "과정록"을 지었다. "과정"은 論語 이씨(李氏)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뜰을 거닐며 아들에게 깨우침을 준 데서 유래한다. 즉 "아버지의 가르침’이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함"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굳이 아버지가 직접 가르치지 않았어도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는 "과정"(過庭)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다. 추적추적 대지를 적시던 가랑비가 곧장 소나기로 바뀌었다.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기 시작하는 굵은 빗속으로 고향 논두렁길을 달리던 어린 시절의 가슴아린 추억이 나타나 한바탕 난도질치고 갔다.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밖으로 뛰쳐나가 공지천에서 소양강 다리까지의 호수를 따라 아기자기하게 단장된 뚝방길을 내달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보폭을 넓히며 그 옛날 아버지의 발자국을 생각했다. 온몸에 때려오는 굵은 빗방울의 촉각이 무척 상쾌했다.

아직 어린 우리 형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당신의 시골 고향인 붓당골 삼촌 집을 찾았다. 오래 전 할아버지께서 자리 잡았다는 그 곳 고향집을 작은삼촌이 계속 지키며 살고 계셨다. 일제시대를 지나고 한국전쟁을 치른 후 얼마 되지 않은 터인지라 세상살이가 무척 어려운 때였다. 생전 처음 와본 시골집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문명의 이기로 보이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쌀 닷 되를 주고 엊그제 매달았다고 하는 조그만 스피커 하나가 툇마루 나무기둥에서 삑삑거리고 있었다. 도시의 백열등 아래서 살아왔던 내게는 이러한 시골의 풍경들이 무척 신기하게 다가왔다.

처음 맡아보는 사랑방 석유등잔 타는 냄새에 잠을 뒤척이다보니 어느 새 아침이 되었다. 오줌이 마려워 바깥마당에 내려서니 땅이 푹푹 꺼졌다. 밤새도록 비가 온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삼촌께서는 두런두런 밤을 새우며 세상의 고달픔을 모두 아우르신 것 같이 안색이 초췌해 보였다. 잠결에 간간이 들은 이야기를 기억했다.

“자네가 이 아이들을 한 이 삼 년 맡아 주어야겠네.”

“형님, 저도 고만고만한 얘들이 다섯이예요. 속히 자리 잡고 데려 가셔야죠. 형수님이 돌아 가신지 얼마 안됐지만 그렇더라도 애들은 아버지 밑에서 커야 되지 않겠어요? 저 역시 천수답 몇 마지기로 살아갈 앞날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허어, 정말 사는 게 어렵긴 하겠네만 내가 배타고 멀리 나가면 도심 한복판에 이 어린 것들을 마냥 내 놓을 수는 없질 않은가? 한 이 삼 년이면 아이들끼리 밥이라도 해 먹을 수 있을 터이니 그때까지만 잘 부탁하네. 되는대로 아이들 생활비는 내 부쳐줄 터이니 그리 심려는 말게나.”

“형님, 아버님 돌아 가신지도 며칠 안됐잖아요? 초상 치르느라 남은 곡식 다 바닥나 버렸어요. 지금 이 장마비와 보릿고개 넘어갈 생각을 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래, 보릿고개는 이걸루나마 어지간히 넘어갈 수 있을 걸세.”

하시며 삼촌의 넋두리에 준비하셨던 봉투를 하나 내 놓으신 게다.

“고맙습니다. 형님, 큰 염려는 마시고 속히 자리 잡으시고 돌아오세요.”

아침을 드신 후 곧 돌아오마고 시골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굉장히 커 보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몰랐지만 아버지의 당당한 모습만큼은 뭔지 모를 어수선한 내 마음을 안심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집 앞 논두렁길을 지나는 동안 아버지는 두어 번 뒤를 돌아다보시며 남겨두고 가는 우리 형제에게 슬그머니 웃음을 보이셨다. 그 웃음 속에는 오랜 세월 헤어져 있어야하는 이별의 슬픔과 사랑, 애정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래서 그때 그 웃음은 가장 존경스럽고 멋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서 평생 간직하고 갈 흑백 초상화로 마음속 깊이 남게 되었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난 논두렁에는 보폭이 넓고 큼지막한 구두 발자국이 깊고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버지의 발자국이었다. 곧 돌아오신다던 아버지는 며칠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발자국을 누가 밟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시 소나기가 오던 날, 굵은 빗방울 속으로 뛰어들어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뛰었다. 그 발자국은 내가 뛰기에 알맞은 간격으로 나 있었다. 뛰는 동안에도 온통 아버지 생각 밖에 나질 않았다. 온몸에 때리는 빗방울이 시원했다. 흠뻑 젖은 옷은 온통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숙모이신 작은 엄마께 엄청나게 혼이 났다. 얼마 전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엄마한테 혼나는 것은 그렇게 상처가 남지 않는다.

그 후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그 발자국만큼은 계속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물론 나 이외에 그 발자국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남겨주신 아버지의 유일한 선물이었기에 학교 길을 오가며 때마다 그 발자국을 보존하기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어느덧 여러 해가 지나 외항선 항해사이시던 아버지가 오랜 항해 끝에 우리 형제를 데리러 오신다고 했다. 동구 밖 논두렁길로 마중을 나간 나는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보이신 아버지께 쫓아가 꾸벅 절을 했다. 아버지는 밝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하얀 중절모를 쓴 멋진 신사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그 동안 훌쩍 커 버린 우리 형제의 모습을 대견해 하시며 나를 덥석 안아 올리고 뺨을 마구 비벼대셨다. 따가운 수염에 쑥스러워진 마음은 아랑곳없이 이내 의기양양해진 나는 아버지보다 몇 걸음 앞서 성큼성큼 그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땅이 적당히 말라 있어 걷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흘끔흘끔 뒤돌아 볼 적마다 아버지께서도 내가 밝고 가는 그 발자국을 똑같이 디디고 따라오시며 웃음을 보이셨다. 앞선 내 발걸음의 의미를, 그 발자국 주인이 아버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내심 짐작을 하셨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께서도 그 옛날 할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논두렁을 걸었던 기억이 분명히 있었으리라고 말이다.

장마에 세상이 눅눅해질 즈음 노인 몇 분을 모시고 점심대접을 하였다. 약주도 함께 권해드리며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회상했다. 즐기시던 노인정 바둑도 뒤로하고 몸져누워 돌아가시기까지 1년 여 동안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또 하나의 아버지의 발자국이다. 임종 직전, 무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짐작하고 숟가락에 소주 몇 방울을 따라 입에 넣어드리자 무척 만족한 표정을 보이셨다. 평소 즐겨하시던 약주를 들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으로나마 약주를 한잔 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살아 계신 동안의 효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과정록"(過庭錄)을 쓸 만큼 아버지의 가르침이 많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으로만 만들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한 삶 속에서 간간이 반추해왔던 "아버지의 발자국"과 같은 회상이야말로 나 뿐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존재하고 있거나 앞으로 존재할 진정한 "과정록"이라 말하고 싶다.

-홍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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