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41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 활동에 참여해 서울 신설동 꼬방동네에서 가난한 민중과 함께 하는 삶을 시작했다. 1976년 하월곡동 달동네로 들어가 민중교회 ‘동월교회’를 열었고, 1982년에는 교회에 국내 최초의 탁아방인 ‘똘배의 집’을 만들었다. 그는 개신교 역사상 유일하게 목회자의 직분마저 벗어버리고, 노동자, 노가다꾼과 데모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경찰서에 끌려가 얻어터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노동자 공동체 ‘건축일꾼 두레’를 만들었다. 항상 그의 삶에는 빈민과 노동자와 함께했고, 부당함을 극복하기 위해 늘 투쟁했다. 고인의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은 “숭고한 삶을 살고 돌아가신 `빈민의 벗" 허병섭 목사님의 영전에 희 국화꽃을 바칩니다”, “허병섭목사님, 오늘 소천! 고생만 하시다 떠나시는 군요. 목사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빈민의 벗, 허병섭 목사님께서 별세하시니 너무 슬픕니다. 역시 모든 목사님이 ‘지금의 그런 목사’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영원한 꼬방동네 빈자의 친구, 목사님 편히 가십시오”등의 반응을 보였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29일 오전 10시에 발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