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타임즈]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어둠의 자식들이 대한민국을 좀 먹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친일매국 부패세력들이 국민 속이고 권력까지 찬탈한 후 한시도 조용할 날 없이 혼란스럽고 뒤숭숭하다. 이제 서야 철저히 속은 것을 깨달은 국민들이 ‘아차!’ 하고 뒤돌아보니, “일제시대 행복했다”거나 “종군위안부는 없었고 자발적 상행위였다”는 한국 말 하는 일본 우익이 국민을 무시하고 짓밟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일제가 식민지 조선민중을 착취하고 무시하고 심지어 죽이고 만행을 저지르던 것처럼 국민은 못된 머슴에 의해 가슴에 피멍이 든 채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 심지어 서민 대통령이라던 노무현까지. 그들 2% 짜리 일그러진 기득권 친일매국 부패세력들에 의해 재임 중 내내 왕따당하고 씹히고 까이고 심지어 퇴임 후에도 권력의 시녀가 된 검찰과 일부 찌라시 언론에 의해 수모를 당한 노무현 대통령이 실추된 명예와 자존심 때문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들 친일매국 사상에 물든 부도덕하고 부패한 어둠의 자식들은 왜 그리 당당하지 못하고 국민과 박근혜마저 속여가면서 서민 편에 선 진정한 정치인들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 집권을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일까? 지난
담배 피우시는 하나님①김현희를 아십니까?하나님! 혹시 김현희 씨를 아십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니까 잘 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김현희 씨는 북한의 지령으로 지난 1987년 KAL기를 폭파한 일당 중 한 명입니다. 그 당시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사건의 장본인인 김현희 씨가 얼마 전 다구치 야에코 씨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공식 석상에 나타났습니다. 다구치 야에코 씨는 1978년 일본 니가타에서 22세의 나이로 북한에 납치되어 이은혜라는 이름으로 김현희 씨를 비롯한 북한공작원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쳤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TV에 비친 김현희 씨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4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외모나 몸매가 20여 년 전 처음 남한 땅을 밟았을 때처럼 여전히 아름다웠고 행동도 품위있고 지성미가 넘쳤습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상한(?) 자태를 지닌 김현희 씨를 지켜보면서 사상이나 이념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일당 독재체제를 고수하며 전세계에서 예의주시하는 위험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
친박연대 이규택 공동대표는 다소 투박하고 거침없는 성격탓에 여느 정치인들에 비해 `솔직 담백한 정치인으로 통한다. 지난 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유모어에는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나이에 비해 때묻지 않은 순박함을 지니고 있다.4.9총선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2,000여 표차로 낙선, 4선 국회의원의 자리에서 내려와 야인이 되었지만 지금은 서청원 공동대표와 함께 친박연대를 이끌고 있는 그와 1시간 정도 인터뷰를 가졌다.-친박연대 창당1주년을 맞는 소감을 말해달라“먼저 창당1주년의 기쁨을 나누기 전에 서청원 대표를 비롯한 우리당 의원들을 향해 표적수사를 했는지 청와대에 묻고 싶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3년후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뛸 것이다” -지금 서 대표를 포함한 3명이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는데..“사실 최종판결에 당운이 걸려있다고 보기 때문에 당력을 집중, 몰입하고 있고 당 활동도 정중동 활동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 재판에 대한 입장은..“누가 보더라도 표적재판 아닌가, 법을 다룬다는 분들이 심증만 갖고....그러나 현재 예감 내지는 조짐이 좋다.
계절은 틀림없이 봄이건만 봄 같지 않다. 유식한 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우리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 상공에는 황사가 잔뜩 꼈다.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황사 낀 상태에서 지상에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물론 WBC 야구 하나 반짝 일본을 이겨 국민감정을 좋게 할 뿐, 팔팔한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청년백수만도 100만 명이 넘고, 일 없는 가장이 200만 명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야말로 실업자 전성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백수요, 가정을 책임져야할 중년 남성들도 대부분이 명퇴니 뭐니 직장을 잃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국 식 비정한 정글 법칙의 자본주의 체제강화로 대한민국은 온통 잿빛이다. 오로지 가진 자만을 유리하게 하는 정책이 피도 눈물도 없는 레이건과 얼마 전 은퇴한 부시가 추구하던 미국 식 신자본주의인데, 그 끝은 파멸임을 보면서도 우리는 실패한 황량한 철길을 그대로 달리고 있다. 경제는 747은 고사하고 날개 없는 추락 중이요, 정치도 후퇴하여 미디어법, 사이버모욕죄 등의 입법 강행추진으로 민주정치가 고사당할 위기에 처했다
가장 큰 공적을 남긴 대통령,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등을 묻는 수많은 여론조사의 결과는 식상할 정도로 거의 동일하다. 국민 10명 중 7~8명의 지지와 존경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쏠려 있다. 더욱 그것은 김영삼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까지 3대에 걸친 ‘부정(否定) 세월’을 도도히 통과하면서 자리매김되었다는 점에서 평가의 진실성에 지존(至尊)의 가치를 부여해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반대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지지와 존경의 대부분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수의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을 떨치고 일어나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마련. 박 대통령을 향한 지지와 존경에는 육영수 여사의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좋아하는 사람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신에 따라 ‘생기는 것’ 없이 박 대통령 내외를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동행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좋아하는 사람들 인터뷰’ 시리즈를 마련했다. / 편집자 주박 대통령을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하지 말라“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 왔네~~”
기축년 시작의 조짐이 아주 불길하다. 19일 새벽 5시부터 용산 재개발 지역의 4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시위대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새총과 화염병, 염산, 벽돌 등으로 무장한 시위자들은 밤새 경찰 진입을 막으며 극렬시위를 벌였다. 이를 진압하고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다. 20일 오전 7시 경, 용산구 한강로 한 건물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진압하던 중 화재가 발생, 경찰 1명을 포함, 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 와중에 화재가 발생되었고 화염병 제작용으로 보관하던 70여 통의 시나에 불이 옮겨 붙으며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이렇게 기축년 새해에 새로운 개각의 진용이 갖추어지면서 국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려고 하는 구정을 불과 1주일을 남겨주지 않은 1월 20일, ‘용산철거민사태’가 터지고 말았다.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하면 마치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여 참사를 빚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 벌써부터 좌파가 장악한 신문과 방송매체에서는 과거처럼 사상자발생만을 강조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초점을 두고 거론하였다. 80년대초부터 공권력의 과잉진압은 약방의 감초처럼 무분별하게 회자되면서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지 오래되었다.II용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실용’이라는 정치브랜드가 있고 자신의 정치브랜드는 ‘국민통합’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원칙’이라는 정치브랜드가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이대통령은 이 ‘실용’이라는 정치브랜드의 서브개념으로 내놓은 ‘경제살리기’는 청계천개발의 전례를 통한 ‘경부대운하건설’이라는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았고 실현여부를 떠나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족중흥’이란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그를 ‘민족중흥의 지도자’란 인식을 심는데 성공했고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주화’라는 자신들만의 정치브랜드로 30년 가까이 정치권을 좌지우지했다.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민주화’란 명분으로 대북정책에 대한 획기적인 방안이라며 ‘햇볕정책’을 내놓고 지난 2000년 6월 15일 분단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켰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도 거머쥐는 쾌거를 낳기도 했다. 역대 정권중 가장 무능한 정권으로 평가받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낡은 정치 타파’를 외치며 대선과정에서 DJ정권보다 더 좌파적인 진보개혁 정치를 구사하며 지지자들을 결속시켰고 결국 정권을 획득했다
書評: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박근혜 자서전을 중심으로 박근혜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한 글이 전문가칼럼에서 1-2위로 올라섰다. 그만큼 필자가 기대한 이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 글에서는 박근혜의 중국관과 독서경향, 그리고 정치스타일을 논해 본다.지난 서평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다루려고 한다.1. 박근혜가 보여주는 중국인식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이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중국에 의존하려는 점에서 미국 행정부의 인식과 궤를 함께 한다. 이것으로 중국문제에 인식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박근혜는 2005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했다. “나는 중국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땅, 엄청난 자원과 수많은 인재를 가진 중국이 배울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배우고, 성공한 제도가 있다면 그 제도를 거침없이 가져다 쓰고 있었다.” 여기에서 박근혜의 통찰력은 빛난다. “그들이 배우고 싶어 할 21세기형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한다.”(p.321)에서는 애국심이 우러나온다.그러나 박근혜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 북한 개입을 정당화시키는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책이나 티베
법원이 15일 인터넷에서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미네르바에 대해 박씨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이 적절하다며 구속적부심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미네르바(박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 및 재판을 받게 됐다.재판부는 박씨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외환 예산 환전 업무가 전면 중단됐다거나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을 전송하였다고 허위의 통신을 하는 등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다는 판단이다.법만을 앞세운 권위 상징적인 판단이 아니였나 의구심이 앞선다. 박씨는 지난해 12월29일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는 내용의 글을 올린것이 화근이 되었다.바로 이것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된 결정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의 말에 따르면 박씨가 구속된 뒤 기획재정부가 는 점을 들어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된 것이다.좀 더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보면 미네르바가 올린 글 중 는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는 것이고, 또한 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개인의 견해를 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부 문서를 허위로 인용한 바탕 위에서 작성한 글로 인해 여론이 나쁜 방향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것이고
한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인 한류가 있어 세계인이 즐겁다. 한류(韓流)는 한국인, 한국 문화만이 창출해낼 수 있는 독특한 우리 것으로 세계화를 지향할 때 더욱 빛난다. 한류는 처음 일본에서 바람을 타기 시작하여 이후 동남아와 중국을 거쳐 유럽, 미주로까지 진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가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고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 외국인이 자국 문화와 다른 우리의 독특한 이문화(異文化)에 대하여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과정 속에 나라의 대외 이미지마저 향상되는 아주 좋은 일이다. 일례로 한류라 하면 88올림픽 이후 불기 시작한 외국인의 김치와 불고기 먹기가 대표적이었고, 90년대 이후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인들의 가슴 속에 진한 감동을 주며 불을 지피고 있다. 이처럼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한류는 역사가 일천한 것 같지만 실은 아주 오래되었다. 한류가 일본에 뿌리를 내린 것은 아주 오랜 백제시대 때부터다. 백제 무령왕 때 이미 왜국에 5경 박사를 보내주어 그들의 문화를 살찌웠으니, 그것이 첫 번째 한류로 이를 받아 소화한 일본은 고대의 아스카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그때 카라스키(犂-한국식 쟁기), 카라고로모(한국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