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타임스 송은섭 기자] 풍남문 앞에서 세계순례대회 시작을 알리는 타종과 함께 순례의 첫발을 내딛은 1,000여명의 순례자들은 한옥마을을 거쳐 한벽루, 승암산(치명자산)을 지나며 11월11일까지 펼쳐지는 세계순례대회의 첫여정을 시작했다.
주최측은 순례자에게 하루 20키로가 넘는 도보여정은 온 우주와 자아가 만나는 영적인 길이기도 하지만 생명과 평화, 그리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세계순례대회 첫 날인 11월 1일, 향교를 지나 한벽루를 향하던 원불교 박명원 교무는 예기치 않은 방류로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던 5명의 유치원생을 목격하고, 그 중 위독했던 한 아이를 인공호흡으로 살려냈다.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순례길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에서의 환대도 많은 순례자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상관면 신리 월암마을(1코스)에서는 음식을 준비하여 순례자들이 배불리 점심을 먹고 다음 여정을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식사장소였던 정여립 생가터 뒤편에는 마을사람의 입을 통해 ‘동냥아치바위’라는 동굴이 있는데, 예전 못먹고 못살던 시절에도 그 동굴에 들어오는 거렁뱅이들은 굶어죽지 않게 마을사람들이 거두었다고 하는데 그 인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완주군 비봉면에서는 마을에서 재배한 블랙베리즙과 생강즙 등을 순례길목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건네며 마을인심을 전했다.
순례자들이 발이 무겁고 숨이 찰 때마다 마을길목마다 특색있게 걸어둔 현수막도 잔잔한 위안이 되었다. ‘환영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저마다 말마디는 다르지만 지나는 길목 길목마다 관심을 가지고 맞아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송광사, 천호, 나바위, 미륵사지, 초남이, 금산사에서의 퍼포먼스는 각 종교거점의 특색을 개성 있게 드러내면서도 하루동안의 순례여정을 의미있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와 계획안에 진행되었다.
송광사에서는 사찰음식의 대가인 대안스님이 직접 20여가지 사찰음식을 마련해 500여명의 순례자들에게 저녁공양을 제공했다. 음악이 있는 무대와 호텔 못지 않은 정갈한 테이블, 쌀쌀한 야외공기를 대비한 난로까지 훈훈한 순례의 첫 밤이 되었다.
천호에서는 마을주민들이 팥죽과 막걸리로 저녁을 제공하고 영원한 안식을 향한 영혼의 순례인 레퀴엠(가톨릭 종교음악)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나바위에서는 수녀님의 통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하고 야외 모닥불 앞에서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에 맞추어 순례자들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특히 이 날은 전주제일고 10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걸으며 순례길의 분위기를 밝고 명랑하게 만들어주었다.
미륵사지에서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예식을 순례자들에게 퍼포먼스로 보여주며 역사와문화, 종교를 아우르는 수천년의 시간을 40여분의 시간에 날 담아내었다.
초남이에서는 마을주민들이 준비한 따끈한 김치찌개와 밥으로 환대하고, 천주교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소속 수도자들이 공연하는 퍼포먼스를 관람했다. 수도복을 정갈하게 입은 수녀님들의 사물놀이, 동정부부의 삶을 그린 공연, 부채춤까지 관람하는 순례자들의 감동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금산사에서는 ‘뇌묵당 처영대사와 의승병들을 추모하며’라는 주제로 특설무대를 마련하여 타악연주와 비보이공연 등 화려하면서도 우리 역사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지킨 승병들의 뜻을 되새겨보는 무대였다.
세계순례대회 기간 중 9일간 진행되는 도보순례는 누구나 제한없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지만, 1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 25키로가 넘는 길을 나선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길을 나서면 길이 보입니다.’라는 순례대회의 말귀처럼 아름다운 순례길에 나선 순례완주자들이야 말로 순례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순례일정에 따라 수십명이 걷는 날부터 수백명이 걷는 날까지 인원은 다르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 일정에 참여하는 20명의 순례자들이 그들이다.
70을 바라보는 순례자, 미국에서 순례길을 찾아온 교민, 산티아고 순례길을 닮은 길을 걷고 싶어 신청한 순례자, 예수회 소속 신부님 등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순례여정 안에서 ‘아름다운 순례, 따로 또 함께’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두고두고 이야기가 될 것이다.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각자 배낭에 든 것을 꺼내어 나누고, 밤이면 숙소에서 물집이 잡힌 서로의 발을 치료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준다. 발목이 아플 때 어떻게 하면 빨리 풀리는지 서로의 비법을 공유하고, 각자 짊어진 마음의 짐을 풀어놓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다.
순례 여섯 째날,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순례중에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서로에게 의사도 되었다가 환자도 되준다며 지금 이순간이 정말 신난다고 순례자는 우문현답한다. 우리 인생여정에서 누구나 성자(聖者)가 될 수 없지만 순례길에 나서면 누구든 길 위에서는 현자(賢者)가 될 수 있고 마음안에 품고 있는 물음표에 답을 찾아가는가 보다.
11월9일(금) 9일간의 순례여정을 마치는 완주자들에게는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회에서 인증하는 순례자증명서가 발급된다. 이 증명서에는 4대종단 종교지도자의 친필서명이 들어가고 아름다운 순례길에 순례자인 느바기(느리게,바르게,기쁘게)로 지칭되는 순례자 이름이 들어간다. 이들을 맞이하는 환대가 11월9일 순례의 첫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풍남문 앞에서 있을 예정이다.
세계순례대회에서 종교거점, 마을거점에서의 환대 못지않게 중요한 활약이 순례꼭두로 불리는 아름다운 순례길 길안내해설사들이다. 2011년도 1기생부터 2012년도 2기생까지 3개월의 교육을 거쳐 양성된 순례꼭두는 든든한 순례길 지킴이, 길안내자로 대회기간 활동중이다. 매일 3-4명의 순례꼭두가 출발부터 도착까지 순례자들을 이끈다.
9일간의 순례여정은 11월10일(토)에 신흥학교와 승암산(치명자산)에서 펼쳐지는 순례한마당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신흥학교강당에서 각 종교합창단의 순례음악회로 첫시작을 알리고, 이어서 전주천변을 따라 승암산(치명자산)까지 약 1시간 모든 이가 어울려 도보로 이동한다. 이때 하자작업장학교 청소년들의 밴드가 선두에서 음악으로 끌어주어 길을 걷던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한다.
승암산(치명자산)에 도착하면 3시부터는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과 함께하는 순례토크, 개신교·불교·원불교·천주교 종교지도자들의 대담, 정율스님의 아베마리아 등 풍성한 볼거리가 무대로 마련된다. 또한 ‘상생과 화합’이란 대회취지에 맞게 ‘사랑실은 짜장’으로 유명한 운천스님께서 직접 현장에서 음식을 마련한다.
세계순례대회의 마지막 날인 11월 11일(일)에는 전라북도청 대공연장에서 순례포럼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정율스님의 사회로 진행되는 순례포럼은 프랑스 순례길 브느와 드 신느티 책임자로부터 프랑스의 순례길 역사와 의미를 듣는 20분간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각 종교 해외초청자 4분의 발제, 세계순례대회조직위원회 고문인 각 종단 4분의 종교지도자들의 토론(진행:작가 한수산)으로 이어진다. 이 자리에는 각 종단의 수도자 및 신도 1,000여명이 참석하여 종교간대화의 장에 함께한다.